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여행/ 기차 타고 떠나는 독일 소도시

알림

여행/ 기차 타고 떠나는 독일 소도시

입력
2011.12.14 11:53
0 0

■ 바흐·그림동화·옛 성… 발길 따라 이야기가 졸졸

독일엔 '가도'라는 말이 많다. 로만티크 가도, 메르헨 가도, 판타지 가도 등등. 가이드북에 따라 일고여덟 가지쯤 된다. 현지어로 된 안내문엔 스트라세(Straße)로 표기돼 있다. 길 자체가 관광자원은 아니다. 하나의 테마로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을 엮은 관광 루트로 이해하면 좋을 듯. 자동차로 여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촘촘하게 깔린 철로를 이용하는 게 편하고 경제적이다. 환경 문제에 깐깐한 독일인들이 일찌감치 열차를 전동화한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덜컹거리는 내연기관의 매캐한 낭만이 이 기차 여행엔 없다.

괴테 가도에서 마주치는 바흐와 루터

지난 주 튀링겐주 아이제나흐.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것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의 생가에서 바흐가 쓰던 골동품 악기로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 입장료 6유로 내고 이런 근사한 경험을 할 거라곤, 두어 시간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ICE)에 오를 때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구 동독에 속했던 아이제나흐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은 도시다. 어린 바흐가 형제들과 함께 공부하던 고향집,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묵던 하숙집이 여염집에 섞여 있다.

시내에서 벗어난 높은 언덕 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르트부르크성이 있다. 12세기 처음 세워진 뒤 중수를 거듭하며 각 시대의 역사와 예술이 층층이 쌓인 성이다. 독일인들에게 유명한 건 열네 살 되던 해 튀링겐 백작에게 시집 와 24세에 비극적 생을 마감한 성 엘리자베트의 이야기. 하지만 외지인에게 익숙한 건 외진 방에 걸려 있는 루터의 초상이다. 1517년 종교개혁을 부르짖다 파문 당한 루터는 이 성에 숨어 성서를 번역했다. 그의 작고 초라한 방은 미로 같은 복도를 구불구불 돌아야 찾을 수 있다.

아이제나흐는 괴테 가도에 있는 도시다. 이 길은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바이마르, 그가 공부한 대학이 있는 라이프치히까지 이어진다. 괴테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에 중세 고딕 양식의 첨탑이 매력적인 에어푸르트, 16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산재한 바이마르, 고풍스러운 거리에 대학생들의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예나 등을 만날 수 있다.

헨젤과 그레텔과 함께 브레멘 가는 길

로만티크 가도와 함께 한국의 배낭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메르헨 가도다. 흔히 '동화'로 번역되지만 '메르헨(Märchen)'은 민담, 전설, 기담 등을 두루 아우르는 독일어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독일 동화에 어둑한 면이 많다고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 요컨대 메르헨 가도는 아기자기한 동화가 이어지는 길이라기보다 중부 유럽의 환상 속으로 빨려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출발점은 헤센주에 있는 인구 9만의 작은 도시 하나우다.

기차역을 나서면 평범한 독일 소도시의 풍경이다. 시내 마르크트 광장에 서 있는 그림 형제의 동상이 없다면 이 도시에서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빨간모자의 이야기가 태어나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짐작할 흔적은 없다. 시가지에서 버스로 10분 가량 남서쪽에 떨어져 있는 필리프스루헤 궁전 정도가 그나마 중세 하나우의 풍경을 간직한 건물. 60세가 넘은 가이드는 "하나우는 일찍 공업이 발전한 도시여서 2차 대전 때 깨끗이 파괴됐다"고 설명하며 다소 감정이 북받치는 듯 보였다. 눈으로 보이는 흔적보다 이야기의 생명력이 더 길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메르헨 가도의 중심지는 하나우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카셀이다. 그림 형제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이 도시에 있는 빌헬름스회헤 궁전 도서관에서 일하며 작품의 소재가 되는 독일 민담들을 수집했다. 시 동쪽에 수백년 묵은 졸참나무와 떡갈나무 숲이 있어 '헨젤과 그레텔'의 깊은 숲을 눈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하멜른, '빨간 모자'의 슈발름슈타트, '브레멘 음악대'의 브레멘 등이 이 길에 이어진다.

판타지와 옛성길의 출발점, 하이델베르크

독일에 남아 있는 옛 성은 모두 2만여 개. 중세 도시의 분위기를 잘 간직한 하이델베르크에서 체코의 프라하까지 성을 테마로 연결한 길이 고성가도다. 서쪽 끝 프랑켄 지방은 보크스보이텔이라는 특유의 동그스름한 병에 담긴 와인이 유명하고, 동쪽 끝 체코 플제니 지방은 필제네형 맥주의 발상지다. 유서 깊은 고성의 레스토랑이나 바에 앉아 술을 홀짝이면서 중세 영주가 된 듯한 착각을 누려도 된다. 공ㆍ후ㆍ백ㆍ자ㆍ남의 작위를 지닌 숱한 기사들의 이야기를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역은 관광 중심지인 하이델베르크성과 꽤 떨어져 있다. 버스나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성 앞까지 교통 수단이 연결되지만 서쪽으로 1km 남짓 떨어진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내려 걷는 게 좋다. 12월 초, 계절이 계절인지라 서너 블록 건너 하나씩 모두 다섯 개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언덕 골목을 따라 걸어서, 귀찮으면 그냥 5분 정도 걸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아름다운 정원과 세계 최대 규모(22만 리터)의 와인 술통이 있는 성에 닿는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남서부를 횡단하는 판타지 가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다른 가도와 달리 이 길에서는 온천, 오래된 대학가, 황제와 귀족들의 성, 울창한 숲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겨울 추위가 매운 다른 지역과 달리 기후가 온난한 편이어서 이 계절에도 고생스럽지 않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독일 기차여행 팁(Tip) 독일 열차 좌석은 1등석(Erste Klasse)과 2등석(Zweiste Klasse)으로 구분된다. 요금은 1등석이 2등석의 1.5배 정도. 2등석도 충분히 쾌적하다. 독일 전역(ICE 포함)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스위스 바젤바드에서 사용 가능한 저먼 레일 패스, 독일을 포함한 17개국에서 사용 가능한 유레일 패스를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의 레일 유럽 (02)755-1144.

아이제나흐ㆍ하나우ㆍ하이델베르크

글ㆍ사진=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