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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방의 수상한 베트남행

입력
2017.07.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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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창립된 100년 역사의 경방(경성방직)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다고 최근 몇몇 보수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이 기사엔 "섬유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돼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다고 판단, 광주 면사공장의 절반을 베트남으로 이전키로 이사회에서 결정했다"는 김준 회장의 말이 인용됐다. 공장이전 비용이 200억원이지만, 베트남 인건비는 한국의 10% 수준이고 연 인상률도 7% 안팎이어서 '남는 장사'라는 회사 설명도 곁들였다.

▦ 경방은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서 1인 1주 공모 방식으로 만든 최초의 근대적 기업이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의 대표적 섬유기업으로 키운 실질적 창업주는 매제 고(故) 김용완 회장이다. 1965년 증시 1호로 경방을 상장한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여섯 차례나 지낼 정도로 재계의 어른이었다. 2세인 고(故) 김각중 명예회장 역시 외환위기 전후 어려운 시절에 두 차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창업정신이나 '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사시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3세 경영의 키를 잡은 김준 회장은 누차 “선친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 경방의 경쟁력”이라고 '명문가'의 전통을 자랑해 왔다. 그런 그가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광주 공장에서 일하는 150명의 직원들"이라면서도 최저임금 때문에 공장이전을 결정했다고 하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유통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경방은 지난해 435억원 등 매년 매출액 대비 10% 안팎의 영업이익을 내 왔고 그동안 쌓은 이익잉여금도 6,000억원을 웃돈다. 반면 지난해 섬유사업부문 412명에 지급된 인건비는 134억원. 16.4% 인상하면 21억원 더 든다.

▦ 경방이 "생존을 위한 필수 조치"라며 베트남에 진출한 때는 2008년이다. 그래서 업계에선 "경방의 매출과 이익구조를 볼 때 최저임금을 핑계삼기보다 좀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솔직하다"고 말한다. “산업 발전과 동시에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철칙”이라는 선친의 말을 떠올려도 그렇다. 이쯤 되면 김 회장은 최저임금 공격에 나선 보수언론 뒤에 숨지 말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 그게 경방의 창업정신에 맞지 않는가.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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