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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에게 세상은 왜 돌을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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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에게 세상은 왜 돌을 던지나

입력
2017.06.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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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이자 번역가인 고 전혜린. 김용언은 ‘문학소녀’에서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 사회의 부당한 혐오를 재조명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필가이자 번역가인 고 전혜린. 김용언은 ‘문학소녀’에서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 사회의 부당한 혐오를 재조명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학소녀

김용언 지음

반비ㆍ236쪽ㆍ1만5,000원

풍운아의 성별은 뭘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자의 성별은, 말할 것도 없이 남자다. 여자는 떠돌다 돌아온 남자의 집이고, 항구다. 밥이고, 엄마다. 그러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막중한 소명을 버리고 정신의 유랑을 감행한 여자들의 흔적이 페이지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번역가이자 장르문학 전문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김용언씨는 신간 ‘문학소녀’에서, 조국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풍운녀’들의 대표주자로 전혜린을 꼽는다. 그리고 그 전혜린을 위시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았던 여자들의 계보를 따라간다. 여정의 동력은 문학소녀라는 ‘멸칭’이다.

“문학청년이 본격적인 작가 ‘등단’을 꿈꾸며 글쓰기에 매진하는 성실한 아마추어의 느낌이라면, 문학소녀는 작가가 되지도 못할,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인문-사회-과학서들이 아니라 감정의 몰입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과 시에 열중하며 여전히 몽상을 끄적거리는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독자라는 느낌이다.”

문학소녀에게 박힌 경멸의 시선을 끄집어내는 데 전혜린을 택한 이유는 저자가 그에게 한 시절의 감수성을 빚져서이기도 하지만, 시기상으로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 등 ‘제1기 여류 문인’과 박화성, 강경애, 전숙희 등 ‘제2기 여류 문인’이 겪은 수난을 모두 경험했으리란 계산 때문이다. 1934년 식민지 경찰관료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소공녀 원피스’를 입고 자란 전혜린, 해외여행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인 1950년대 독일 뮌헨대의 유일한 동양 여학생이었던 전혜린, 1965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수면제 과용으로 숨진 전혜린, 고 박정희가 국가 재건에 방해된다며 “우리의 적”이라고 명한 “이등 객차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의 바로 그 소녀, 전혜린이다.

전혜린을 다시 읽는 것은 증오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여자의 교양이 현모양처로서의 삶 - 남편의 바깥 사정을 이해하고 아이를 훌륭하게 양육하는 일 - 외에 소용될 때 얼마나 거대한 증오에 직면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20세기 한국사를 뒤진다. 1920년대 인기였던 잡지 ‘신여성’에는 김원주 작가의 연애와 성형을 조롱하는 글이 실렸다. “조곰 납작하든 코날을 일본 잇슬 때 융비술로 곳처서 웃둑하게 되기는 하엿는대 그 대신 살이 켱켜서 두 눈이 가운데로 족곰 쏠렷다나요.” 김동인이 1939년 발표한 단편소설 ‘김연실 전’은 김명순 작가의 실제 삶을 가져다 쓴 이야기로, ‘선구녀’ 연실이가 문학에 눈을 뜨고 자유연애를 하다가 몰락하는 줄거리다.

행간마다 배인 비웃음에선 강렬한 혐오가 읽힌다. 저자는 수십 년 간 확대ㆍ배포된 그 혐오가 자신에게 와 박혀 자기혐오로 작동한 것을 깨닫는다. “솔직해지자. 전혜린의 ‘드라마 퀸’으로서의 기질, 문학과 예술에 현혹되어 자신이 그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문학소녀’로서의 기질 앞에서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사람은 없다.”

‘흑역사’로 묻어 두려고 했던 전혜린을 재평가하는 작업은, 이내 저자 자신을 포함해 이 땅의 모든 읽고 쓰는 여자들을 변호하는 일로 바뀐다. 여성에게 교양을 권장하면서도 그 교양이 정신적 각성, 방황으로 이어질라치면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찌푸림으로 안 되면 비하와 조롱, 따돌림을 동원해 어떻게든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이 사회의 풍경을 책은 골고루 비춘다. “독서에의 몰두, 탐닉, 열렬한 환상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전유물처럼, ‘사랑과 낭만’에만 매달리며 현실이 아닌 꿈만을 좇는 물정 모르는 ‘미성숙한’ 여성의 태도인 것처럼 배제되어 왔다. 문학 고전을 읽으며 교양을 쌓는 소녀의 이상적인 모습이 점점 열광적인 도취의 상태에 빠지는 철없는 ‘문학소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시기적절하나 인용과 재인용이 책 분량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일한 문제제기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돼 최근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저자가 느낀 당혹감이 책 곳곳에 보이는데, 이를 소화해 자기 목소리로 바꾸는 것보다 기존의 분석에 자리를 내주는 쪽을 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2017년이라는 숫자가 희미해졌다. 그러나 레퍼토리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혐오라면, 그에 대한 반박도 늘 새로울 필요는 없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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