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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남부러울 것 없던 수달이 ‘은둔의 삶’을 택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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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남부러울 것 없던 수달이 ‘은둔의 삶’을 택한 사연

입력
2018.08.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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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만 해도 수달이 멸종한 줄 알았다.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무자비하게 사냥했기 때문이다.
80년대만 해도 수달이 멸종한 줄 알았다.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무자비하게 사냥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 동물원에 새 동물 가족이 생겼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수리(6)와 달이(8)가 우리 동물원으로 이사 온 것이다. 첫 2주간 환경, 먹이, 사육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달이가 잠깐 식욕부진에 빠지긴 했지만 지금은 수리보다도 사육사와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관련기사 보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요즈음은 해질녘이나 한밤중에 큰 강가에서 헤엄치는 수달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80년대 초만해도 수달이 거의 멸종한 줄 알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완전 멸종을 막아보려고, 그리고 그동안 방치했던 책임을 피하고자 1982년 천연기념물 제 330호로 지정했다. 그렇게 천연기념물이 되면 함부로 사냥하거나 잡아가지 못하게 된다. 

한때 수달이 멸종한 줄 알았던 것도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사람이 많아서다. 보양식인 붕어나 잉어를 잡아 먹는 ‘나쁜 놈’이라며, 물속에서 사시사철 견디며 사니 모피가 얼마나 좋겠냐며 죽이고 또 죽였다. 그뿐만이랴. 농사짓고 공업용수로 쓴다고 강에 있는 물들을 온통 끌어다 쓰고 강에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내다 버렸다. 건강을 위해 산책한다고 강가나 수변의 갈대밭 같은 것을 모조리 없애고 길을 놓았다. 먹이인 물고기가 사라졌고, 그렇게 수달은 삶의 터전을 인간에게 빼앗겨 버렸다. 

수달은 멸종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은둔자처럼 숨어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달은 멸종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은둔자처럼 숨어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강가에서 사라진 수달들은 이제 일부에선 천연기념물 해제를 논의할 정도로 급격하게 개체 수가 늘어났다. 사실 모두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위험하고 잔인한 인간들이 사는 곳을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들어갔던 것이었다. 무서운 것 없이 너른 강가에서 맛 좋고 영양 많은 큰 물고기를 잡으며 활개 치던 시절은 뒤로하고, 은둔자처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아주 작은 피라미급 물고기나 개구리, 도롱뇽 혹은 가재 같은 갑각류들을 잡아먹으면서 겨우겨우 연명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수달은 보기보단 굉장히 조심스러운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이나 큰 동물이 그들 은신처 근처에만 나타나도 아예 그 지역에서 먼 데로 이주해 버린다. 수달은 강물을 따라서 하루 10㎞ 이상도 이동하니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으로 삼던 강가에서 다른 곳으로 홍길동처럼 사라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진 것도 소유할 것도 없으니까 몸만 가면 그만이다. 

꼬리까지의 길이가 2m가 넘고 체중이 30㎏에 달하는 아마존 큰 수달도 인류의 파괴행위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꼬리까지의 길이가 2m가 넘고 체중이 30㎏에 달하는 아마존 큰 수달도 인류의 파괴행위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마존 큰 수달(giant otter)을 비롯해 전 세계에는 총 13종의 수달이 사는데, 모두가 대개 비슷한 이유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세계 어디서든 수달이 점점 사라지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동물들에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들 때문이다. 어떤 맹수도 인류가 벌이는 대규모 파괴 행위를 감당할 수 없다. 

가령 꼬리까지의 길이가 2m가 넘고 체중이 30㎏에 달하는 아마존 큰 수달은 가끔 아나콘다나 재규어, 카이만악어와 작은 규모의 먹이 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거대한 아마존 강이 있는 한 서로 원 없이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면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 원주민이 아닌 총과 장비들로 무장한 외지 개척자들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수달을 비롯한 모든 야생동물들을 살육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관광이다 개발이다 해서 마구 강물을 어지럽히고 너무나 넓은 면적의 밀림을 개발하고 물고기들을 씨도 남기지 않고 남획하는 통에 영원할 것 같았던 강가의 최강자 큰 수달 역시 영토와 먹이들을 점점 잃어가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 사는 수달은 유라시안 수달(Lutra lutra)로 머리는 귀여운 원형에 코는 하트형이고 아담하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외모다.
한국에 사는 수달은 유라시안 수달(Lutra lutra)로 머리는 귀여운 원형에 코는 하트형이고 아담하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외모다.

한국에 사는 유일한 수달은 유라시안 수달(Lutra lutra)이다. 몸길이 70㎝, 몸무게 5.8~10㎏, 꼬리 41~55㎝, 머리는 귀여운 원형, 코는 하트형이고 아주 아담하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눈은 까맣고 작지만 앞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은 양안시(양쪽 눈에 맺힌 상을 하나의 입체로 만들어 보는 것)를 가지고 있고, 귀는 아주 작고 코와 귀는 물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닫히며 2분 이상 잠수해서 한 번에 400m 정도를 전진할 수 있다. 몸 전체에 이중의 잔털이 나 있고, 이런 털가죽 안에 두껍게 발달한 피하지방층이 있어 한 겨울에도 따로 살찌우기나 털갈이를 하지 않고도 씩씩하게 먹이활동을 하며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다. 

다섯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수달은 강에선 최상위 포식자이며 깨끗한 강가나 호수 부근에서만 서식하는 환경지표종이다.
다섯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수달은 강에선 최상위 포식자이며 깨끗한 강가나 호수 부근에서만 서식하는 환경지표종이다.

한 겨울에는 유목민들처럼 동면하는 물고기들을 따라 물이 깊은 댐이나 강가로 이동하여 살고 여름에는 사람이 적은 강의 상류 부근에서 주로 활동한다. 파충류, 어류, 작은 포유류, 조류를 가리지 않고 먹는 육식동물이지만 주식은 메기, 붕어, 잉어 같은 큰 물고기이다. 발가락에 물갈퀴는 있지만 다섯 발가락을 골고루 가지고 있어서 육상에서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도 있다. 강에선 최상위 포식자이며 생태계가 잘 발달되어 있는 깨끗한 강가나 호수 부근에서만 서식하는 환경지표종이다.

주로 추운 한 겨울 1~2달 동안 짝을 맺고 임신 기간인 65일이 지나면 1~5마리(보통 2마리) 새끼를 강가 옆 바위 굴이나 나무 굴 같은 임시 둥지에서 낳는다. 암컷 혼자서 6개월가량을 키운 후 독립을 시키며 2년 이상을 주변에서 돌본다.

번식철이나 육아기에는 가족들과 함께 다니지만 원래 수달은 고독한 사냥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번식철이나 육아기에는 가족들과 함께 다니지만 원래 수달은 고독한 사냥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번식철이나 육아기에는 잠시 사랑하는 짝이나 아니면 어린 새끼들을 한두 마리씩 데리고 다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달의 기본은 ‘혼자서도 잘 살아요!’다. 은밀히 숨어서 스릴 있게 사냥하고 낮에는 조용한 굴속에서 충분히 잠을 자고 달밤엔 바위섬에 상륙해서 가만히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는, 아주 낭만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삶을 사는 동물이 우리가 잘 몰랐던 수달의 본 모습니다. 그것은 또한 야생의 표범이나 매 같은 고독하지만 품위 있는 킬러들의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수달(왼쪽)의 귀엽고 정겨운 모습은 생김새와 습성이 비슷한 해달(오른쪽)과도 닮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달(왼쪽)의 귀엽고 정겨운 모습은 생김새와 습성이 비슷한 해달(오른쪽)과도 닮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달의 일생은 야생에선 평균 10년, 길어야 20년 정도다. 지능이 높고 활발하고 낙천적이며 호기심이 많다. 후각, 청각, 시각, 촉각 모두 발달해 사냥에 최적화되어 있고 어두운 물속에선 주로 입 주변의 긴 수염(감각모)을 이용해서 사냥을 하는 포식자다. 하지만 성격이 매우 친근한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키우면 사람도 곧잘 따른다고 한다. 

주로 낙동강, 지리산, 오대산 등지에서 발견되며 앞서 말했듯 요즈음은 여러 도심 하천이나 강에서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혼자서 미끄럼 타고 눈밭을 구르며 얼음을 타고 놀기를 무척 좋아한다. 귀엽고 정겨운 모습은 생김새와 습성이 비슷한 해달(일본 말로 ‘라코’)과도 닮았다. 해달은 북태평양 바닷가에 살며 몸의 부력으로 물 위에 동동 떠서 배 위에 돌을 올려놓고 조개를 까먹고 새끼를 올려놓고 돌보기도 한다. 인기 애니메이션 주인공 ‘보노보노’가 바로 이 해달이다. 

수달이 생태계에서 영영 사라지면 강은 외래종을 비롯한 온갖 동물들이 날뛰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인들 무사할까.
수달이 생태계에서 영영 사라지면 강은 외래종을 비롯한 온갖 동물들이 날뛰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인들 무사할까.

인적이 드문 강호에서 조용히 홀로 살아가는 동물들이라고 함부로 업신여기거나 들쑤셔서 80년대에 이어 제2의 멸종 위기를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수달이 생태계에서 영영 사라지면 아마 강은 외래종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 동물들이 서로 날뛰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인들 무사할까? 

글ㆍ사진 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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