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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논설고문

등록 : 2017.08.31 16:21
수정 : 2017.09.01 01:23

[이유식 칼럼] '이 총리 100일'의 빛과 그림자

등록 : 2017.08.31 16:21
수정 : 2017.09.01 01:23

'대통령 만기친람 개혁'에 초기 역할 미약

'살충제 계란' 파문 계기로 책임총리 부각

'100일 이후' 주목... 문 정부 '맏형' 기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식품부ㆍ해양수산부 핵심정책 토의' 에 앞서 환하게 웃으며 양복 상의를 벗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든 때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민주당의 실세그룹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던 7월 말이었다.

김 부총리가 증세나 최저임금 등 핵심 소관사안에 뒷북만 치고, 탈원전 최저임금 등 주요 국책 과제 논의에서 소외된 정황인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 때였다. 그런데 이 총리는 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내민 깜짝 인사카드였고 어렵사리 한 달 만에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뒤에도 "일상적 국정은 전부 총리의 책임이라는 각오로 전력을 다해 달라"는 각별한 당부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각 및 청와대 인사 파문으로 경색된 정국은 그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총리의 일차적 권한인 국무위원 제청권과 내각 통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원조 친문의 '이너 서클'과 따로 논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메아리 없는 '막걸리 소통'만 외친다는 입방아에 올랐다. '문제 있는 곳에 총리 있다'는 그의 의욕은 컸고 가뭄ㆍAI 현장 등을 찾는 민생 발걸음은 분주했지만 국민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책임총리' 역할은 그것보다 훨씬 컸던 탓이다.

그즈음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만나 물어봤다. 문 대통령이 총리의 헌법적 권한과 책임을 약속하고도 대통령의 만기친람만 빛나는 것은 문제 아닌가, 총리의 자리에 너무 인색한 것 아닌가라는 요지였다. 그런 질문을 예상한 듯 답은 간결했다. "사회 각 부문의 적폐를 걷어내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 초기 국정은 대통령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힘을 나누면 동력이 떨어진다. 총리가 상대적으로 가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만간 총리의 시간이 올 것이다"는 것이다. 이 총리가 취임 직후인 6월 12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갖고 정국 현안에 대한 얘기를 나눠 온 만큼 '신뢰와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언론인 정치인으로 살며 쌓아 온 이 총리의 역정이나 그의 포부를 살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권력 나누기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책임총리의 전형으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이해찬 총리가 꼽히지만, '문재인 정부 첫 총리'의 영예와 멍에를 함께 안은 그 역시 자신만의 색채와 목소리로 그 이상의 롤 모델이 되겠다는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성공은 이 총리의 성공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이 총리의 실패는 곧바로 문 대통령의 실패로 이어지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최근 발생한 '살충제 계란' 파동은 내주 취임 100일을 맞는 이 총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는 공직자에겐 국민의 4대 의무 외에 '설명의 의무'가 더 있다며, 사회적 감수성과 정성, 준비 등 3가지를 갖춘 그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기강을 잡았다. 때마침 문 대통령은 "소통 공정 분권 탈권위 등의 가치만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며 "지금부터는 실적과 성과를 통해 국민의 삶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기질과 배경만 보면 이 총리는 촛불 개혁에 올인하는 문재인 정부보다 실용주의로 무장한 김대중 정부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굳이 발탁한 문 대통령의 뜻은 집권세력의 의욕 과잉과 독주를 견제하고 일의 완급과 선후를 관리하는 '맏형'역을 해 달라는 것이었을 게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권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총리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총리가 있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이 총리의 시간'이다. 권력과 국민이 직접 맞닿는 인사 문제에서 청와대의 반(反) 지성을 꼬집는 파열음이 계속되고, 소득 주도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의심받으며, 미래 로드맵 없는 과거 청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증하고, 야권의 '신적폐' 공세도 만만찮은 때다. '이 총리 100일'보다 '100일 이후 이 총리'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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