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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마다 재계약? 대리점은 파리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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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마다 재계약? 대리점은 파리목숨

입력
2018.04.20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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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투자해 정비공장 지었는데

일방적인 계약종료 통보 갑질도

서울, 평균 계약기간 1년 5개월

“재계약 때마다 과다 목표 요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손해 떠안기도”

10년 이상 A중공업의 굴삭기와 휠로더(모래ㆍ자갈 등을 퍼 나르는 기계) 등을 판매해온 대리점주 B씨는 지난 2016년 본사에서 ‘계약연장 불가’ 통보를 받았다. 당시 A중공업은 건설장비 사업부를 ‘A건설기계’ 법인으로 분사(2017년4월)시킨 뒤 전국 대리점 40여 곳을 광역대리점(1곳)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었다. B씨는 “본사는 과도한 판매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자 ‘목표미달’을 핑계로 2016년 5월부터 1년 단위인 계약기간을 3개월로 쪼갰다”며 “이후 계약갱신을 빌미로 ‘광역대리점과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라’고 압박했고, 이를 거부하자 계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주장했다.

B씨처럼 계약종료 통보를 받은 대리점은 7곳이나 된다. 이 중에는 본사 요구로 20억원을 투자해 정비 공장을 지은 대리점도 있었다. B씨는 “본사의 일방적인 계약종료 ‘갑질’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다”며 피해 대리점주들과 함께 조만간 본사를 공정위에 제소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A건설기계 관계자는 “이미 수 차례 대리점주에게 광역 서비스 계획을 설명했다”며 “대리점이 본사의 영업방침을 따를 수 없다면 계약 만료 시점에 계약이 종료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통상 1년 안팎으로 재계약이 진행되는 본사와 대리점간 거래관계 속에 대리점주들이 본사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가맹점주처럼 대리점주에게도 계약갱신 청구권(재계약 요구권)을 부여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19일 서울시의 ‘대리점 불공정거래행위 실태조사’(2015년 1,864개 대리점 조사)에 따르면 대리점 계약갱신 시 평균 계약기간은 1년 5개월에 불과했다. 대다수 대리점이 1년 5개월마다 본사와 ‘원점’에서 재계약 협의를 해야 하는 불안한 지위에 놓여있는 셈이다. 실제로 실태조사에서 대리점의 20.1%가 “재계약 시 ‘갱신거절’이나 ‘해지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유 대리점주 C씨는 “매년 말 재계약 협상 때마다 본사는 전년 매출보다 10% 이상 높은 매출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판매장려금을 주지 않겠다고 압박한다”며 “계약 해지가 두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목표치만큼 과다 발주한 후 그 차이만큼 손실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열 샘표식품 인천 서구 대리점 대표는 “1년마다 본사가 계약서와 함께 불합리한 거래 조건을 담은 약정서를 들이밀면 도장을 찍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대리점법에도 가맹법처럼 계약갱신 청구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가맹법은 계약갱신 청구권을 인정, 가맹점은 10년간 본사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기간 본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 대리점은 제조업체에서 상품을 받아 소비자에게 재판매하는 일종의 ‘도매상’이다. 가맹점은 본사가 영업권을 제공하면 그 대가로 가맹금과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다. 성춘일 참여연대 변호사는 “대리점도 초기 투자비용(평균 2억8,600만원)의 일정 부분을 회수할 때까지 영업을 보장해 줘야 한다”며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에게 최대 5년간의 계약기간을 보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도 “2013년 대리점법 의원 입법안에 제시됐던 계약갱신청구권과 계약해지 제한규정 등이 대리점법 최종 제정안에선 누락됐다”며 “이를 다시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없잖다. 조성국 중앙대 교수는 “100% 전속거래인 가맹사업과 달리 대리점은 비전속 대리점(복합대리점ㆍ복수의 업체에서 납품을 받는 대리점) 등 형태가 천차만별이라 획일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 ‘과잉규제’가 될 수 있다”며 “협찬금 요구, 밀어내기 등 불공정거래와 계약갱신을 연계하는 본사의 갑질 문제는 법 개정보다는 공정위의 적극적인 법 집행을 통해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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