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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아시아로 간 틸러슨

입력
2017.04.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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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동북아시아 방문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한 전략수립에 착수하는 중요한 기회를 맞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향후 4년 간 미국 정부가 부닥칠 최대 국제적인 도전, 즉 북한의 ‘운반 가능한 핵무기’ 집착에 대해 한반도 재래전을 촉발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안 마련에 본격 착수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틸러슨이 짧은 방문 기간 무엇을 얻어냈는지는 상세하기 말하기 어렵다. 이 뚱한 정치인은 수십 년 관행을 깨고 그의 전용기에 언론인들을 대동하기를 거절하고, 상세하고 포괄적인 그림 없는 짧은 공식 성명서만 제공했을 뿐이다. 일정에 따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던 한국에서 틸러슨은 진지한 어조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한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다”고 말했다.

과거 수 십년 간의 ‘실패한 정책들’에 비춰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명확한 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즐겨 하는 방식의 성명으로 결론을 지었다. “모든 선택지(option)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군사적 행동도 고려될 수 있다는 암시다.

한반도에 대한 틸러슨의 발언은 즉시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모든 선택지’라는 언급은 “미국은 전쟁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귀에는 ‘음악’이었다.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 장사정포 사정권 밖에 안전하게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숨가쁘게 관련 논평과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의 원숙한 정치인이 사태를 명확하게 보고 있고,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틸러슨의 직설적인 접근은 그의 다음 기착지에서는 분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베이징에서 중국에 많은 인내심을 보여줬다. 일단 논쟁거리가 될 만한 이슈는 제쳐두고, 북한 문제에 관해서 중국과 함께 기꺼이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틸러슨은 이를 위해 중국의 대국주의적인 성향을 묵인하기까지 했다. 중국인들이 만족해할 것은 확실했다.

짧았지만 표면상으로 우호적인 틸러슨의 중국 방문은 많은 이들로부터 미중 양자관계의 순조로운 진행에 기여했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는 트럼프 정부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완벽한 선택지를 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전략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 같은 전략의 핵심적인 요소는 일본과 한국의 강화된 군사동맹으로, 최첨단 미사일방어체계를 넘겨주는 것을 포함한다. 또 하나는 중국에 대한 좀더 솔직 담백한 접근이다. 미국은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미일 및 한미 간 군사협력이 강력한 미중 관계에도 필수불가결하다고 납득시키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이 사드 체계를 도입하기로 한 결정과 관련, 이미 한국을 응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은 이 시스템을 자신의 안보에 위협이라고 간주해 한국과의 무역 유대를 격하하는 조치를 포함, 양국의 관계를 인질로 잡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움직임들은 중국의 오래된 버릇이다. 미국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는 미중관계를 훼손시킬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중국이 그런 짓을 그만 두게 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은 장차 한반도 통일이 미중 양국과 한국의 관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솔직하게 중국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군사력 사용이 협상 테이블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틸러슨은 옳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과거 조지 W 부시 정부가 대화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아 발생했던 한국 내 반미 움직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협상도 이전에 논의되고 합의되었던 것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북한은 (6자 회담의) 다른 5개 당사국과 합의한 자신들의 모든 의무조항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중국과 미국 측 일부 인사들처럼 북한과의 협상안을 무시하거나 생채기를 내는 것은 외교적 접촉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절대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서는 안 되는 선택지도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예를 들자면, 연례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좀더 지속 가능한 해법을 도출하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북한의 ‘운반 가능한 핵무기’에 대한 욕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의 정보 결핍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유예는 즉시 양국의 동맹을 훼손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핵무기와 운반수단을 개발하는 국가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개념을 폐기하겠다는 틸러슨이 옳다. 하지만 이는 단지 첫 단계일 뿐이다. 그와 트럼프 정부 동료들은 일관성 있고 포괄적인 계획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두서너 개보다는 많은 문장으로 새로운 정책을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전 동아태담당 차관보ㆍ덴버대학 조지프 코벨 국제대학장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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