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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16년 전 사라진 아들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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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16년 전 사라진 아들을 찾아주세요”

입력
2018.03.2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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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수사 전담팀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 전담팀의 활약으로 이루어진 16년만의 모자상봉. 청년이던 아들은 그 사이 백발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 전담팀의 활약으로 이루어진 16년만의 모자상봉. 청년이던 아들은 그 사이 백발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먹물 같던 아들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하얗게 새어 있었다. 어머니는 16년 만에 아들을 만난다는 소식에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하얗게 밤을 새웠다. 청년에서 중년이 되어 나타난 아들은 어머니에게 안기면서 오열했다. 어머니도 꺼이꺼이 울음을 토했다. 곁에 있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연신 아내의 등을 쓰다듬었다. 몇 달 전 아내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아들이 반가우면서도 혹시 아내가 기진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 곁에 섰던 경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허락도 없이 불쑥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 어떡합니까!”하고 화라도 내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아들이 보고 싶다는 노모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무작정 서울로 모시고 갔다.

대구 달서경찰서 실종전담팀이 서울에서 아들을 찾았던 날, “어머니가 고령에 몸도 안 좋으시니 전화를 드려보라”고 하자 아들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후 경찰관들은 몇 차례 노모에게 확인 전화를 했지만 아들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말만 들었다.

노모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 당뇨, 혈압, 심장질환 환자였고 얼마 전에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합병증으로 내일 당장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불안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릴 기회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김선화(40·경정) 여성청소년 과장은 팀원들과 회의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일단 모시고 갑시다. 처음엔 원망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고맙다고 할 겁니다.”

그렇게 16년을 노숙자로 떠돌았던 아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다음날 저녁, 수사를 담당했던 실종전담팀은 조촐한 회식을 했다. 회식 자리에서 팀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오갔던 단어는 ‘천륜’이었다. 수사과정에서 말 그대로 하늘의 도움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곽미경(50·경감) 여성청소년수사 팀장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선화(40·경정) 여성청소년 과장은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수사팀에게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도록 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선화(40·경정) 여성청소년 과장은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수사팀에게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도록 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곽미경(50·경감) 여성청소년수사 팀장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이 모든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곽미경(50·경감) 여성청소년수사 팀장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이 모든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이야기의 시작은 올 1월 실종사건 전담팀이 꾸려지면서 시작됐다. 지난 20년간 발생한 장기실종사건을 재조사에 들어갔다. 사건기록을 살피던 수사팀의 눈에 특이한 사건이 들어왔다. 2002년 실종된 후 주민등록이 말소된 윤창석(가명·당시39)씨 건이었다. 당시 윤씨는 사행성 게임인 ‘바다 이야기’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빚을 진 채 사라졌다. 수사팀은 16년간 전국 변사자 기록과 강력사건과 연관 파일을 모두 뒤졌지만 윤씨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실종자의 부모에게 전화했다. 경찰이라는 말에 노모는 대뜸 “우리 아들이 살아있느냐”고 물었다. 다음 날 경찰서를 찾아와서도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노모는 눈에 띄게 쇠약했다. 하루에 먹는 약만 10여 가지였다. 몇 달 전 위암 말기 판정까지 받았다고 했다. 노모에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돌연 간절한 눈빛이 되었다. 시간이 없었다. 수사팀도 조급해졌다.

노모를 만난 후 이 사건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조회하다가 희망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15년 넘게 죽어있던 주민등록이 불과 2달 전에 갱신된 것이 확인됐다. 곽 팀장을 그 보고를 받는 순간 “찾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뭔가 운명의 손길이 이끄는 느낌이 들었죠. 주민등록이 갱신되고 장기 실종팀이 발족한 거니까요. 되려는 일은 어떻게든 되잖아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확인 결과 주소도 엉터리였고 흔한 휴대전화도 없었지만 전혀 낙담이 되지 않았다. 난관이 닥쳤다 싶은 순간 다시 행운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윤씨가 영등포역에서 무임승차를 하다 적발된 기록이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박상열(49·경위) 실종팀 반장을 비롯해 3명의 수사관이 서울로 달려갔다. 노숙자로 지냈을 거란 직감이 온 것이었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노숙자 쉼터도 이 잡듯이 뒤졌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워낙 들락날락하는 노숙자도 많았고, 쉼터 근무자들도 로테이션 근무를 하는 까닭에 한 자리에 모아서 물어보기가 힘들었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 고심하던 차에 다시 행운이 찾아왔다. 막 쉼터에 출근한 상담사 한명이 이렇게 말했다.

“어, 제가 이분하고 상담을 했어요.”

얼마 전 상담을 하고 직장까지 소개해줬다고 했다. 상담사들도 로테이션으로 근무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우연히 만난 건 천운이었다. 상담사가 일러준 회사로 달려갔다.

2시간 넘게 문 밖에서 기다렸다. 수사관들이 다가가 신분을 밝히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어떻게 저를 찾았습니까?”

아들을 찾아 서울로 올라간 수사팀. 왼쪽부터왼쪽부터 박상열(49·경위)실종팀 반장, 김재환(45)경사, 김용철(44)경사, 안상진(39)경사. 이들은 하루 만에 16년 동안 종적을 감췄던 아들을 찾았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아들을 찾아 서울로 올라간 수사팀. 왼쪽부터왼쪽부터 박상열(49·경위)실종팀 반장, 김재환(45)경사, 김용철(44)경사, 안상진(39)경사. 이들은 하루 만에 16년 동안 종적을 감췄던 아들을 찾았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수사 전담팀이 사건 파일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수사 전담팀이 사건 파일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10년 넘게 유령처럼 떠돌던 그였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믿고 있던 까닭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이들에게 기이한 느낌까지 받은 것이었다.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해 말 즈음에, 갑자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노숙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고, 일도 시작했죠.”

보고를 받은 김선화 과장은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지더라고 했다. 아들의 마음에 변화가 온 시점이 바로 노모가 암 판정을 받던 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달에 수사팀이 꾸려졌다.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수사팀은 아들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어머니에게 꼭 전화를 드리십시오.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의 상봉이 있은 후 윤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박상열(49·경위) 실종팀 반장에게 “용기가 나지 않아 전화를 못 드렸다”면서 “경찰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부모님께 불효할 뻔했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수화기를 들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윤씨는 현재 재활훈련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공장일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노숙인을 돕고 싶어 사회복지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노모는 “아들이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너무 기특하고 행복하다”면서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의 얼굴도 봤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도 받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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