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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남한산성의 김무성과 유승민

입력
2017.10.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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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오른쪽ㆍ김윤석)과 최명길(이병헌)과)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현실 정치에서도 명분이냐, 실리냐의 싸움은 반복된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오른쪽ㆍ김윤석)과 최명길(이병헌)과)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현실 정치에서도 명분이냐, 실리냐의 싸움은 반복된다. CJ엔터테인먼트

뒤늦게 본 영화 ‘남한산성’의 백미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독대다. 원작 소설엔 없는 이 논쟁이 와 닿은 건 현실 정치와 포개져서다. 명분에 목매는 김상헌과 현실을 놓지 못하는 최명길을 보며 두 사람이 떠올랐다. 혁신이 우선이냐, 통합이 먼저냐를 놓고 결국 다른 길을 택한 유승민과 김무성이다. 역사적 의미를 고려할 때 두 사례를 마주 놓는 건 분명 무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배경을 국가의 생존이 아닌 정당의 생존으로 치환하면 닮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최명길은 “살아온 자리가 그랬듯 내가 죽어야 할 자리가 있다면 오랑캐들의 발 아래는 아닐 것”이라는 김상헌에게 답답하다는 듯 묻는다. “죽다니요. 왜 삶의 길을 두고, 죽음의 길을 말씀하십니까. 그 죽음에 정녕 삶이 있는 것입니까.” 김상헌이 재차 “그 삶의 길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최명길은 “살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고 답한다.

인조가 청의 칸에게 항복문서를 보내느냐 마느냐를 놓고 두 사람이 벌이는 갑론을박도 소설로 익히 알려져 있다.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다”는 최명길과 “명길이 말하는 삶은 죽음의 길”이라는 김상헌의 공방은 가히 난형난제다.

혁신이냐, 통합이냐를 놓고 갈라진 유승민ㆍ김무성 의원도 비슷한 논박을 벌였다. “동지들과 죽음의 계곡을 건너겠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보수 개혁을 이루겠다는 유승민에게는 김상헌이, “정당의 존재 이유인 선거를 포기할 순 없다”며 통합으로 생존의 길을 가야 한다는 김무성에게는 최명길이 겹쳐지는 이유다.

결국 항서를 보내기로 결정한 인조가 ‘욕을 면치 못할 텐데 괜찮겠느냐’고 묻자 “(살아서) 치욕을 감당하겠다”는 최명길의 답변은 또 어떤가. 최근 만났을 때 “(탈당과 복당을 한다면)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가는 것”이라고 처연하게 항변했던 김 의원이 생각난다. “원칙도 명분도 없는 통합은 죽는 길이고, 죽을 각오로 혁신해야 진짜 사는 것”이라는 유 의원의 말은 김상헌의 마지막 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임금까지도 말이오.” “그런 것까지 내가 결정해야 하느냐”는 무능해서 무참하기까지 한 인조의 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제작의도가 그랬겠지만, 두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골 멘트가 자동 재생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서날쇠다. 대장장이로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른바 민중이다. 하지만 밑바닥 삶을 모르는 남한산성의 관료들에게 백성의 곤궁함과 해법까지 알리는 지혜를 지녔다. 왕과 대신들이 공허한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 그는 목숨을 걸고 원군을 요청하는 왕의 서한을 전달한다. 죽음을 각오했다가 진짜 비참하게 죽을 뻔한 그가 살아 남은 비결은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아서”다.

영화 밖의 세상에서도 주역은 국민이다. 현실이건 명분이건, 결국 두 사람에게 가장 앞서는 건 자신의 이익이다. 이런 정치권을 보노라면, 납세자이자 유권자인 시민이 나서는 게 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입에는 ‘국가’와 ‘국민’이 달렸지만 눈으론 배지밖에 못 보는 선량들이 궤멸된 보수의 폐허 위에서도 자기 몫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말이다. 다음 총선 전까지 3년이나 그럴 테니 유권자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에 굶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인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만들려면 이 나라의 서날쇠들이 깨어 ‘기억투표’로 응징하는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의 불이 붙은 지 1년이다. 정권 말고는 바뀐 것 없어 또다시 미완의 혁명이 된 촛불집회의 과제는 그래서 정치권에 미룰 게 아닌 시민이 안아야 하는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김지은 정치부 차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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