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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에게도 119는 절실” 박승균 119 심리 상담 소방관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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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에게도 119는 절실” 박승균 119 심리 상담 소방관의 울림

입력
2018.04.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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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기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난 박승균 소방위는 “끔찍한 재난 사고를 경험한 소방관들의 정신적 후유증(트라우마)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지난 5일 경기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난 박승균 소방위는 “끔찍한 재난 사고를 경험한 소방관들의 정신적 후유증(트라우마)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허탈했다. 쏟아진 눈물에 가슴은 미어졌다고 했다. 예고된 인재로 보였기에 무력감도 컸다. 지난 달 말 충남 아산에서 유기견 구조 작업 도중, 숨진 여성 소방관과 소방관 실습생들의 참사를 바라본 박승균(47) 경기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 소방위 심정은 그랬다.

“도대체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만 해야 할까요. 인력 지원만 제대로 됐어도…. 비참할 뿐입니다.”

지난 5일 오전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난 그는 밤샘 근무를 마친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산 소방관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격정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3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아산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원활한 현장 작업을 위해선 점프카 운전사까지 포함해 단련된 소방관이 최소한 4명이 필요합니다. 이번 아산 사고 현장엔 운전사를 포함해 여자 소방관 1명과 여성 실습생 2명이 나갔어요. 실습생 2명을 제외하면 실전에 투입 가능했던 소방관은 운전사와 여자 소방관으로, 2명 뿐이었어요.” 순직한 소방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왼쪽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단 그의 표정도 금세 어두워졌다.

지난 5일 경기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난 박승균 소방위는 “외상 후 스트레스는 소방관들이 감내해야 할 직업병은 아니다”며 “충분히 치유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5일 경기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난 박승균 소방위는 “외상 후 스트레스는 소방관들이 감내해야 할 직업병은 아니다”며 “충분히 치유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는 이미 ‘위험 수위’

19년차 배테랑 소방위인 그는 소방관들 사이에선 전문 심리 상담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끔직한 재난 사고 현장에서 다친 동료 소방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게 그의 또 다른 소임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선에 서 본 사람만 느끼는 공포감과 중압감이 있어요. 참혹한 광경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가늠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집니다. 옛말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로 소방관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소방관들에게도 119는 절실합니다.” 박 소방위는 소방관들에게 숨겨진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지난해 4월 국내 최초로 동료 2명과 함께 소방관 전담 상담 조직인 ‘소담’팀을 결성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담은 ‘소곤소곤 담소’와 ‘소방공무원 상담’이란 의미에서 붙여졌다. 현재까지 소담에 도움을 청한 소방관들은 2,000여명에 달한다.

물론, 소방관들도 처음부터 소담에게 마음을 열진 않았다. “소방관 한 사람당 3번의 만남은 기본이었습니다. 한번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소방관을 만났어요. ‘최선을 다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는 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였어요.” 그가 심리 상담사를 고집하는 이유였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8배나 높았다.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가진 박 소방위는 이론적인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직 소방관인 그는 광운대 상담복지정책대학원 상담심리치료 석사학위를 취득(2016년)한 데 이어 현재 ‘소방관의 PTSD 예방과 긴급심리상담에 대한 연구’로 박사 과정도 밟고 있다. 지난 2016년 그는 소방관들의 심리 치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제43회 소방안전봉사상 대상’의 영예도 안았다.

박승균 소방위는 현장 구조 출동과 심리 상담은 그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말했다.
박승균 소방위는 현장 구조 출동과 심리 상담은 그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말했다.

구조 현장 출동과 심리 상담은 ‘숙명’

박 소방위가 이처럼 소방관들의 심각한 내상 치료에 발벗고 나선 것은 그가 직접 겪었던 뼈아픈 경험이 영향을 줬다. “소방관 생활을 10년 정도 했을 때였어요. 갑자기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습니다. 출동 벨이 울리는 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머리 속에선 ‘혹시 이번엔 저승사자가 나한테 찾아오진 않을까. 살아서 못 돌아오는 게 아닐까. 가족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나리오가 그려졌어요. 솔직히 정말 무서웠습니다.”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던 지난 기억 속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간호사였던 아내가 소방서 구급대에 지원하면서 법관의 꿈을 접고 소방관으로 들어선 그의 앞날에도 먹구름만 몰려오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마음의 병은 좀처럼 치유되지 않았다. “제 살길은 제가 찾아야 했어요. 숨쉬기도 어려웠으니까요. 소방관의 일을 떠나서, 당장 제가 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뒤늦게 심리학에 빠져든 이유다. 덕분에 외상 후 스트레스는 소방관들이 감내해야 할 직업병은 아니란 처방전도 찾아냈다. 재난 현장을 보고 놀란 충격은 지극히 당연한 데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상담) 또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란 진단에서였다. “아직도 심리 상담을 불편해 하는 소방관 동료들이 적지 않아요. 행여 심리 상담 기록이 자신에게 불리한 약점으로 남게 될까 봐서 꺼리는 겁니다. 그래서 소담팀에선 소방관들과의 대화 내용을 누설할 경우, 법적 책임까지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상담을 시작합니다.” 그는 PTSD를 포함한 소방관들의 내적인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였을까. 구조 현장 출동과 심리 상담을 병행하면서 힘들 법도 했지만, 멈출 뜻은 없어 보였다. “중단할 순 없어요. 힘들고 지친 동료들을 외면할 순 없으니까요. 극한 상황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해내는 보람 또한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의 숙명은 이미 정해진 듯 했다. 남양주=글ㆍ사진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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