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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5.02 14:06

[이정모 칼럼] 아버지 말 들으면 망한다

등록 : 2017.05.02 14:06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 역시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아들을 의사로 만들 생각이었다.

갈릴레오 또한 여느 자식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랐다. 하지만 자신이 수학과 천문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아버지를 설득해 수학자의 길을 걸었다. 수학자가 된 갈릴레오는 2,000년 동안이나 유럽사회를 지배했던 천동설을 뒤엎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찰스 다윈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자식에게도 조부 때부터 내려온 의사라는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했다. 두 아들을 억지로 의과대학에 진학시켰다. 찰스 다윈도 다른 자식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뜻에 따라 형을 이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찰스 다윈은 형과는 달리 야무지지 못했다. 수술하는 장면을 보고 뛰쳐나올 정도였다. 기껏해야 딱정벌레나 잡는 놈이라고 역정을 내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거기서 지질학과 식물학의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자연학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결국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썼다. 수천 년간이나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종의 고정성을 부인하고 생명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인간 역시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라는 이론을 확립했다.

만약에 갈릴레오와 다윈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평생 의사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아니라도 그 누군가는 지동설과 진화이론을 확립했겠지만 역사의 발전은 꽤나 늦었을 것이다. 또 두 사람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관찰하지 못해서 가슴이 새카맣게 탔을 것이다. 두 사람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의사가 아닌 수학자와 자연학자의 길을 간 것은 개인에게나 인류에게나 복되고 복된 일이다.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온다. 700만 년 전 침팬지 계통과 갈라선 인류는 거의 전 역사 동안 1억 명을 넘지 못했다. 서기가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2억 명이 되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될 무렵에는 그 수가 두 배가 되었고, 1804년에야 10억 명을 돌파했다. 내가 태어난 1963년에는 전 세계 인구가 35억 명이었으나 지금은 75억 명에 달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지구 인구는 두 배가 된 셈이다. 700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인구수가 불과 200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직업 세계도 도둑처럼 변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13년 옥스퍼드 대학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앞으로 20년 안에 현재 직업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텔레마케터, 회계사, 소매판매업자, 전문 작가, 부동산중개인, 기계전문가, 비행기조종사 등이 대표적이다.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길지는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의사들은 아직 크게 긴장하고 있지 않지만 IBM의 왓슨 같은 로봇 의사의 등장은 의료계의 직군 분포를 크게 바꿀 것이다. 아직 왓슨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의사와 왓슨이 제시하는 치료법이 다를 경우 인간이 아니라 로봇의 결정을 따르는 환자의 수가 더 많다. 왓슨은 시작일 뿐이다. 새로운 인공지능 의사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인간 의사의 역할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지금의 40~50대 의사처럼 살 수는 없다. (의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의사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직업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갈릴레오와 다윈의 아버지도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식들에게 의사가 되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들의 시대만 하더라도 부모님의 삶의 경험과 지혜가 자식에게 크게 도움이 되던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같은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은 갈릴레오와 다윈의 판단이 옳았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부모의 지난 인생 경험이 자식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다. 부모들이 살았던 시대는 자식이 살아갈 시대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젠 부모님의 권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시대다. 다만 부모의 애정만은 가슴에 품으면서 말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같이 중요한 직책을 담당할 사람을 투표처럼 단순한 절차로 정하는 이유가 있다. 이게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방식을 통해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가 투표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된다. 나라의 앞날, 민족의 미래, 세계 평화, 인류의 번영이 아니라 누가 내 삶에 가장 이익이 되는가를 평가하면 된다.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개인의 이익이 모여서 사회의 이익이 되고 인류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전공과 직업을 택할 때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투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뜻대로 투표하면 망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라. 딱히 좋은 사람이 없어도 투표하라. 그래야 산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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