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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전업주부에게 꿈이란

입력
2016.07.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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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태우고 응급실로 가던 중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내리지 않자 걱정이 앞선 나와 남편은 서둘러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꽉 막힌 도로 위를 힘겹게 움직여 병원 앞 사거리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아이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참다못한 남편이 차를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 두고 아이를 안고 뛰었다. 그동안 아이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침을 흘렸다. 정신없이 달려가 아이를 응급실 침대 위에 눕힌 순간 경련은 멈췄다. 곧바로 아이의 몸에 주삿바늘이 꼽혔다. 어디선가 간호사가 나를 부르며 아이의 이름과 몸무게, 마지막으로 해열제를 먹인 시간을 물었다. 놓으려던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으며 하나하나 대답했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 고열과 싸웠다. 2시간 마다 해열 주사를 맞았지만 체온은 금세 40도를 넘었다. 의사는 열성경련은 흔한 일이지만 24시간 이내에 반복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쉬지 않고 아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그렇게 더디 더디 시간이 흐르고 해가 뜰 때쯤 아이의 체온이 39도 아래로 떨어졌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집으로 보내고 잠시 아이 옆에 누웠다. 눈물이 났다.

올해 초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집안일에 육아에 공부까지 하려니 시간이 모자라서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아이에게만 집중했어야 했는데 내 욕심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만 같았다. 얼마 전 다니고 싶었던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어도 좋다는 테스트 통과 메일을 받고 기뻐했는데 모든 일정을 다 미뤄야 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놓고 싶지 않았다. 참 못된 엄마였다.

전업주부에게 꿈이란 사치품이다. 삶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에 해당하지 않는, 있으면 좋겠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항목이다. 여유가 있다면 사치를 부려 볼만도 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전업주부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대개 가정생활의 걸림돌이다. 일간, 주간, 월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만 해도 일상은 충분히 고되다. 그러니 그 와중에 꿈을 품고 키워나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행여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엄마의 꿈은 삭제 대상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주변에서도 도와주지 않는다.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우리는 비교적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시댁이나 친정에 급한 일이 생길 때 워킹맘이라면 일이 방패막이 되어줄 때도 있겠지만 전업주부들은 빠져나갈 틈 없이 그 일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전업주부의 꿈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멀찍이 물러나기 일쑤고 때로는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간신히 꿈을 부여잡고 사는 전업주부들에게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 보육은 그야말로 커다란 상처였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냉정했다. 종일 집에 있는 엄마들이 왜 아이를 기관에 맡기냐며 전업주부에게는 아예 무상보육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이 그리는 전업주부의 일상은 아이를 맡기고 한가롭게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는 모습이겠지만 단언컨대 일반적인 전업주부가 그런 삶을 사는 경우는 드물다.

직장인이 이직을 꿈꾸듯이 전업주부들도 충분히 꿈을 가질 수 있다. 꿈을 꾸며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박탈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워킹맘과 전업맘 모두에게 무상 보육의 혜택이 고루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퇴원을 앞둔 아이의 몸에 열꽃이 피었다. 울긋불긋한 반점이 보기 흉한데 왜 이를 두고 열꽃이라 부르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열이 내렸다는 신호인 붉은 반점이 꽃처럼 예쁘게만 보였다. 아이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잘 버텨주었다. 아이가 싸우는 동안 나 역시 참 많이 갈등했지만 꿈을 계속 지켜가기로 다짐했다. 이런 나의 결심이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믿고 싶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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