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표향 기자

등록 : 2018.05.15 14:53
수정 : 2018.05.15 18:28

제작비 500만원 단편으로 칸에… “초청 소식에 멍했죠”

등록 : 2018.05.15 14:53
수정 : 2018.05.15 18:28

비평가주간 초청 ‘모범시민’

24세 학생감독 김철휘씨

28세 신인연기자 윤세현씨

경마장 화장실을 배경으로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 묘사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중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단편영화 '모범시민'의 주연배우 윤세현(왼쪽)과 김철휘 감독은 “칸영화제 같은 엄청난 자리에 와서 긴장된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올해 제71회 칸국제영화제는 한국에 초대장 3장을 보냈다. 수신인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경쟁부문)과 윤종빈 감독의 ‘공작’(미드나잇스크리닝부문).그리고 마지막 한 장은 단편영화 ‘모범시민’이 받았다. ‘모범시민’은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비평가주간에서 중ㆍ단편경쟁부문에 초대됐다. 프랑스비평가연합이 주최하는 비평가주간은 비록 공식부문은 아니지만 참신한 주제의식과 영화문법으로 뤼미에르 극장(칸영화제 공식부문 중심 극장)에 걸린 영화들을 긴장시킨다. ‘모범시민’은 중ㆍ단편경쟁부문 10개 작품 중 유일한 아시아 영화다. 앞서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와 장률 감독의 ‘망종’ 등이 비평가주간을 찾았다.

영화는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더러운 경마장 화장실에 말끔한 정장 차림 청년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청년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벽에 덕지덕지 붙은 신용대출 스티커를 떼어내고, 막힌 변기까지 뚫고야 만다. 한탕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욕망이 씻겨져 나간 자리엔 더 악랄한 유혹이 자리를 잡는다. 상영시간 11분 52초 동안 위트와 반전과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빚어진다. 칸 현지 관객 반응이 좋아 수상이 먼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다.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마주한 김철휘(24) 감독은 “개인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결국엔 자신의 만족감과 이익을 위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들려줬다. 영화의 출발은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변기 뚜껑이 닫혀 있으면 왠지 불안하잖아요. 그 느낌에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죠.”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중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단편영화 ‘모범시민’. 인디스토리 제공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중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단편영화 ‘모범시민’. 인디스토리 제공

스태프 13명. 촬영은 3회차로 계획했다. 상가 화장실을 빌렸다. 그런데 2회 촬영을 하다 쫓겨났다. “상가 관리인은 저희가 화장실 미술 세팅을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던 거죠(웃음).” 제작비는 총 500만원. 단편이라지만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엔 부족해 보이는데 그나마도 예산을 초과한 것이란다. “촬영 때문에 화장실 칸막이를 떼어냈는데, 그 칸막이가 쓰러지면서 변기까지 고장났어요. 수리비가 좀 들었어요.”

성실한 청년의 놀라운 반전을 연기한 주인공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단편영화와 연극 무대 등에서 활동해 온 배우 윤세현(28)이다.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해 ‘모범시민’과 만났다. “이 청년의 직업이 타인에겐 해를 입힐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에겐 그저 생업일 뿐이에요. 과장 없이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연기했어요. 너무 성실해서 집착처럼 보이는 그 모습이 칸의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했던 것 같아요.”

‘모범시민’은 동국대 전산원 영화학전공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감독이 영화제작 워크숍 수업에서 만든 영화다. 심지어 연출 입문작이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영화 일을 하고 싶었을 뿐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을 꿈꾸지도 않았다고 한다. 영화 완성 뒤에 배급사 몇 군데에 영화를 보냈고, 독립영화 배급 전문 인디스토리와 계약했다. 인디스토리가 이 영화를 칸영화제에 출품하면서 김 감독은 생애 첫 영화로 칸에 오게 됐다. 기가 막힌 행운으로 치부하기엔 연출력이 범상치가 않다. “처음 소식을 듣고는, 이게 무슨 얘기지? 내가 아는 그 칸이 맞나? 그냥 멍했어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중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단편영화 '모범시민'의 주연배우 윤세현(왼쪽)과 김철휘 감독이 13일 프랑스 칸 해변에서 함께 웃음짓고 있다.

김 감독과 윤세현, 촬영감독까지 세 사람은 칸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김 감독은 “상상조차 못했던 곳에 왔는데 상상보다 엄청난 자리라는 걸 실감한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윤세현은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무섭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하지만 칸영화제가 이들에게 자극과 격려가 된 건 틀림없어 보였다.

“칸에서 ‘공작’을 봤어요. 저렇게 큰 영화에 출연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그만큼 준비가 돼 있나 돌아보게 됐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연기해야죠.”(윤세현) “아직 감독이라 불리는 게 어색해요. 하지만 영화는 계속 만들고 싶어요. 저는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영화에 담아 보고 싶어요.”(김 감독)

칸=글ㆍ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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