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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페루…남반구의 스위스 우아라즈

입력
2017.0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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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지도를 보면 흥미롭다. 꼭 뒤집어놓은 둔탁한 롱 부츠 같다. 이탈리아 지형이 날렵한 패션 부츠를 떠올린다면, 페루는 태평양의 품에 기댄 편안한 신발에 가깝다. 그 발뒤꿈치 안쪽에 우아라즈(Huaraz)가 있다. 태평양에 인접한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약400km. ‘남반구의 스위스’, ‘트레커의 성지’ 등 멋스러운 별칭은 다 쓸어 담은 페루의 속살이다. 우아라즈만큼 자연계의 금수저가 또 있을까. 코디예라 블랑카(Cordillera blanca, 하얀 대산맥)와 코디예라 네그라(Cordillera Negra, 검은 대산맥)의 두 산맥이 동ㆍ서를 가로지르며 안데스의 숨결을 지붕으로 삼는다. 도심에서도 여러 각의 설산은 병풍처럼 걸려 있었다. 아차, 우린 이미 해발 3,052m에 공중부양한 상태였다. 상점에서 찬거리를 사면서도, 인간이란 무릇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안도감이 잠재했다.

우아라즈는 전세계 산악인의 베이스캠프로 사랑 받고 있다. 산타 강(Santa River)이 졸졸 흐르고 카예혼 데 우아일라스(Callejon de Huaylas) 협곡에 붙은 상업의 요충지다. 이곳에서 2박 3일부터 14박 15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뚝심들이 불을 붙인다. 해발 6,768m의 우아스카란(Huascarán) 산은 히말라야 등반의 예습대상지로 활용될 정도다.

그러나 우린 과도한 도전, 모험과는 거리가 먼 족속이었다. 특별한 병명은 없어도 건강 검진에 늘 ‘위험’ 표시가 나온다. 이를 악물고 무리하면 그 후폭풍에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거의 방임에 가까운 여행을 즐겨 온 우리가 매일 가이드를 쫄쫄 따라다니며 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악마 투어와 협상했다. 쉬운 선택인 줄 알았는데, 가히 철군 행진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투어를 마친 뒤에는 여지없이 ‘떡실신’, 그리곤 뾰족산 정상을 탈환하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 하하하, 크게 웃으면서. 3일간의 우아라즈 투어에서 만난 대표 코스와 풍경을 ‘예습 편’으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DAY 1, 마을과 호수에 코가 꿰이다

이보다 더 알찰 순 없다. 우아라즈를 중심으로 한 안카쉬(Ancash) 주(州)를 맛보고 젖어 드는 맛보기 투어. 하루를 매몰차게 소진하는 8~9시간 풀 코스다.

①카르우아즈(Carhuaz)

우아라즈와 함께 카예혼 데 우아일라스를 관통하는 마을. 야자수 아래 사이 좋은 현지인이 이곳 명물인 아이스크림에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무릎을 맞대는 평화가 있다.

②라구나 치난코차(Laguna Chinancocha)

호수공포증이 있다고 했던가. 투명한 물빛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샛눈으로 풍경을 훔치며 1시간여 걸었다. 라구나 데 양가누코 중 하나인 라구나 치난코차는 미풍에도 바람의 잔무늬를 예민하게 그렸다.

③캄포 산토 데 융가이(Campo Santo de Yungay)

1970년 안카시 주의 지진으로 우아스카란의 빙하가 와르르 무너졌다. 비행기 시속에 맞먹게 융가이 마을을 돌진해 2만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이슬처럼 사라진 그때의 마을이 묘지와 함께 살아 있다. 잠시 묵념.

DAY 2, 역사의 질곡 속으로 매몰찬 드라이브

호수로 때를 벗겨내고, 그 빈자리에 역사를 개켜 넣는 투어. 해발 높이 뛰어올라 산허리의 지그재그 도로를 전력 질주하는 아찔한 이동이 껴 있다.

①라구나 데 케로코차(Laguna de Querococha)

백마가 달릴 법한 평원에서 햇빛을 머금은 호수. 먼발치 푸카라유(Pucaraju)와 야나마레이(Yanamarey) 산마저 반짝반짝 물광을 냈다. 페루의 지도가 숨겨져 있다고 하여 찾다가 눈이 멀 뻔한 기억.

②투넬 데 카우이쉬(túnel de Cahuish)

때아닌 두통으로 치닫던 해발 4,516m의 터널을 지났다. 자연에 순응한 도로는 타이어 아래 낭떠러지, 창문 옆 절벽이다. 풍경이 3D로 다가와 입이 바싹 말랐다. 차 시트에 껌 딱지처럼 붙었다.

③차빈 데 우안타르(Chavín de Huántar)

기원전 1200년경 건설하기 시작한 차빈(Chavín)의 고고학적 유적지. 잉카 이전 문화다.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나 면밀한 가이드 없인 잡초와 돌멩이 천지다. 한 자유 여행자가 언감생심 투어에 끼어들었다. “저기요, 사례는 할 테니 설명 좀 듣게 해줘요.”

DAY 3, 푸야의 열정과 빙하의 냉정 사이

자연을 무시했던 자도 자연을 경배하게 했다. 코디예라 블랑카를 품은 우아스카란 국립공원(Parque Nacional Huascarán)의 진주를 탐미하는 투어. 높은 해발에 체력은 KO패 당한다.

①아구아스 가시피카다스 데 푸마팜파(Aguas Gasificadas de Pumapampa)

잘 생긴 각도의 설산을 바라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 달의 위상에 따라 온천의 기화점이 달라진다는 설명을, 난 논리적으로 이해할 길이 없다. 발 밑은 뜨겁고 눈앞은 차가웠다.

②푸야 데 라이몬디(Puya de Raymondi)

100년 가까운 세월 속에 단 한 번의 꽃을 피우자마자 생을 마감한다. 안데스 고산지대에만 허락된 이 파인애플과 식물은 인생이 꼭 한 편의 시 같다. 시 제목은 ‘꽃이 지니 사랑도 떠나네’ 정도.

③네바도 파스토루리(Nevado Pastoruri)

5,000m가 넘는 해발까지 올라야 했기에, 코카(고산병 방지용 코카나무 잎) 한 봉지를 샀다. 걸음을 뗄 때마다 숨이 멎었다. 다리는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극인가. 풍경이 어질어질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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