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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학창시절 이어 직장서도 왕따… 인간관계 너무 힘들어요

입력
2018.03.05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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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때 심한 따돌림으로

조울증 판정받고 마음의 문 닫아

회사생활선 여차장 눈 밖에 나

악몽 이어져 2년 만에 퇴사

화나게 하면 몇 배로 갚아줘야

누가 저 좀 말려주세요

어린시절 상처 덩어리 때문에

대인관계를 대립으로 느껴

갈등 생기면 잘잘못부터 따져

복수와 응징 스위치 작동

대인관계의 상대성 인정하고

다양한 대처법을 배워 나가야

재작년 중소기업에 입사했다가 조직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2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혹시 중소기업 어디에나 회사 창립 때부터 함께하며 텃세를 부리는 직원이 한 명쯤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여자 차장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사해 회사 돈 관리를 도맡는 사람이었어요. 직접적인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자 직원들을 이용해 저를 일부러 고립시켰어요. 약점을 잡아 끊임없이 헐뜯었어요. 밥도 혼자 먹게 했어요. 스카치테이프를 얼만큼 사용하느냐까지 꼬투리를 잡았고 억지로 야근을 시켰습니다. 나중에 제가 항의하자 자기에게 복종을 하지 않으니, 다른 직원들을 통해 교육시킨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상무님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차장의 논리는 부서에 상관없이 여자 직원들은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거였어요. 처음엔 고개도 숙여 보고 아첨도 해봤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미 제 마음 속엔 여자들에 대한 증오가 가득했어요. 학창시절에 겪은 것과 똑같았고, 반복되는 인생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전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심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초등학생 땐 공부를 잘 해서 엄마와 선생님께 칭찬 받는 데만 관심 있었어요. 중학생이 돼보니 제 주변엔 친구가 없더군요. 절 싫어하던 아이들이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고등학생 때 한 남자아이가 절 교탁 앞으로 끌고 가 제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든 일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요. 너무 수치스러운 기억이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놓고 비웃던 여자애들, 선생님의 방관. 학교에서 숨 쉬는 게 힘들 정도였어요.

부모님과 선생님께 이야기해봤지만 한계가 있었어요. 엄마는 빠듯한 생활 속에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열성적인 분이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등학생이면 애도 아닌데 매번 고자질할 수도 없었고요. 아무도 절 도와줄 수 없었어요. 고등학생 때 처음 자살시도를 하다가 엄마한테 들켰어요. 엄마가 바빠서 아빠가 쉬는 날 저와 함께 정신과에 상담을 갔는데 그날 아빠 눈빛이 너무 상처가 됐어요. 두 분 다 우울증의 개념을 이해 못해요. 그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전 조울증 판정을 받았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어요.

그러던 것이 사회생활에서까지 이어지니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일로써 인정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회사는 이미 그 차장 손에 있었습니다. 제가 버티자 그 차장은 자긴 이 회사를 20년이나 다녔다며, 회사 내에서 절 왕따시켰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상사에게 차장의 괴롭힘이 도가 지나치다고 얘기도 해봤지만 그 차장의 텃세는 자신도 못 말린다며 방관했습니다. 학창시절 절 괴롭힌 아이들과 형식적인 훈계로 상황을 모면하는 선생님들이 떠올랐어요. 결국 그만두고 나서 국세청에 회계비리를 고발했습니다.

회사를 퇴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차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고 싶어요. 고등학생 때 절 괴롭힌 여자애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그 애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휘황찬란합니다. 여러 명이 한 사람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응징하고 싶어요. 지금도 가능하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 그 애들을 찾아가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도저히 용서가 안돼요.

퇴사한 뒤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고 있어요. 저를 조금이라도 화나게 하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사람들에겐 몇 배로 복수해야 직성이 풀려요. 평상시에 조금이라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나오면 꼭 항의를 합니다. 제가 억지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미치도록 싫어하고 제가 진다는 느낌을 견디지 못해요. 20대의 조직생활을 하면서 10대 때의 억눌러진 마음이 함께 폭발하는데 너무나 오래된 스트레스라 어떻게 하면 회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저 좀 멈춰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지현(가명ㆍ28세ㆍ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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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씨의 사연을 들으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삶은 과연 행복하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고통스럽고 마음 아픈 일을 과연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마음이 회복되는 날이 올까? 무엇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주변의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마음이 편안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현씨에게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대인관계의 상처와 그로 인한 억울함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잘못한 게 대체 뭐길래, 왜 저들은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하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지현씨의 삶을 무겁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불행과 어려움, 반대로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을 모아보면 그 합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지현씨의 인간관계는 유독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우선적인 원인은 분명 부당하게 지현씨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있어요.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와 모멸감을 준 이들이 잘못한 일이에요.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장난이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그들의 행동을 두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지현씨에게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지현씨가 느끼는 그 억울함과 부당함에서 오는 화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지현씨는 옳지 않음을 이야기도 해보았고 부모님과 윗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상황을 정확히 이야기했지만, 지현씨 입장에서는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얼마나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았을까요. 상황을 바로 잡지도, 마음의 도움을 받지도 못했을 때 무력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런데요 지현씨,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자주 보는 주변의 사람들, 가까운 사람과 그럭저럭 잘 지낼 때 우리는 마음의 편안을 느낄 수 있어요. 인간관계 안에서 약간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즐거움을 나누고, 또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현씨 인생에서는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지현씨의 아팠던 마음을 너무나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제가 하는 이야기가 지현씨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현씨를 위로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편안한 인간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려고 합니다.

대인관계는 언제나 상대방이 존재합니다. 상대방은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대방은 때로는 내가 선택할 수 없을 때도 있고, 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너무 힘들어서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그럭저럭 잘 처리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나를 보호하면서,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이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수학을 배우듯 배워야 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능력이 있는 지현씨가 오늘부터라도 이 부분을 배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제가 그걸 진심으로 가르쳐드리고 싶어요. 지현씨는 잘못한 게 아니라 대인관계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생활 속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배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요.

사회성은 후천적으로 배우는 겁니다. 아무리 인성이 좋고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사회성을 길러주지 않으면 잘 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지현씨는 이 부분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조금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배우면 됩니다. 배우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물론 배우는 과정이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그 과정을 그저 겪어나가며 배우면 됩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걱정이 하나 있어요. 지현씨는 똑똑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한다는 걸 만나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제 걱정은 지현씨가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경험 때문에 마음 속에 크고 무거운 덩어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 덩어리가 마음에 아주 단단하게 붙들려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걸 떼어내야 합니다.

지현씨는 인간관계를 아주 쉽게 ‘대립’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표현 방식이 지현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금방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특징이 지현씨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짓거나 좋게 말하지 않을 때 이걸 자신에 대한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자극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회로가 빠르게 작동하는 거죠.

물론 어떤 경우는 상대방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어요. 10번 중에 4번은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현씨는 그럭저럭 잘 대해주는 6번 보다는 잘 못해주는 4번에 더 방점을 찍어요. 그래서 언제나 기분이 나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걱정됩니다. 그런 경험이 마음 속에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이걸 떼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좌절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지현씨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지현씨는 갈등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따집니다. 지현씨의 말이 옳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인간관계는 옳고 그름만으로 진행되고 해결되지 않아요. 때로는 내가 옳더라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어야 해요. ‘미안합니다’ 한 마디가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지현씨는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자, 더 힘 있는 사람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 했어요. 이것 역시 인간관계를 다루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 방법이 어쩌면 고자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최종적으로 지현씨는 그들이 속한 집단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선택했어요. 그냥 떠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벌을 주고 싶어 했지요. 잘못한 것에 대한 응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어 하는 건 복수와 응징의 방법이에요. 지현씨를 나무라거나 탓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에요. 이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이 방법만 가지고는 대인관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렵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 사실을 깨닫는 것만이 지현씨가 인간관계에서 편안함과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 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지현씨를 돕고 싶은 마음에 이 조언을 드리지만 정말 주저하게 됩니다. 내 마음의 고통과 갈등, 화, 분노, 좌절의 원천은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해결의 열쇠도 내 자신이 갖고 있어요. 저는 지현씨가 이것을 깨닫고 버텨내면서 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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