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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이미도가 점령했던 영화 번역... 요즘 대세는 황석희

입력
2017.12.30 04: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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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가 번역 작업을 한 영화 ‘데드풀’(왼쪽)과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포스터.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 작업을 한 영화 ‘데드풀’(왼쪽)과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포스터.

“번역가가 누구야?” 최근 극장에서 나오는 이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한때 모든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이미도란 이름이 붙은 것처럼 요즘 영화 번역의 대세는 황석희다. TV쇼와 드라마 번역으로 출발한 황 번역가는 5년여 전부터 영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웜바디스’ ‘노예 12년’ ‘캐롤’ ‘히든 피겨스’ ‘인사이드 르윈’ ‘스포트라이트’ ‘킬러의 보디가드’ ‘스파이더맨: 홈 커밍’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수백 편이 그의 손을 거쳤다.

황 번역가의 강점은 영미권 문화, 특히 하위 문화에 대한 섬세하고 동시대적인 접근이다. 10대들의 특수한 은어를 비롯해 욕설, 속어, 비어를 영화의 타깃 관람층에게 가장 쉽게 와 닿는 말로 번역한다. 외화 자막엔 항상 등장하지만 한국에선 잘 쓰지 않는 ‘엿 먹으라’는 말을 자막에서 없앤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다.

믿고 맡기는 번역가에서 일약 스타 번역가가 된 계기는 2016년 개봉한 영화 ‘데드풀’이다. 데드풀은 마블코믹스 소속 히어로들 중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국내 개봉 당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전국 관객 330만명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선 “약 빤 자막”이란 칭송과 함께 자막이 흥행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식 유머와 욕, 신조어가 난무하는 영화의 가벼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황 번역가는 집에 와서 편한 신발로 갈아 신은 데드풀의 대사 “So Comfy”를 “완전 편해”로, 손목을 자르는 데드풀을 보고 상대가 한 말 “Nasty”를 “쏠려(토할 것 같다는 뜻의 속어)”로 번역했다.

지나친 의역이나 과격한 단어 사용에 대한 자제도 미덕으로 꼽힌다. 7월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는 주인공에게 ‘일을 그르쳤다’고 책망하는 대사가 있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개와 성관계를 했다’가 된다. 황 번역가는 개란 단어를 유지한 채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개판 쳤다”란 표현을 썼다. 극중 인공지능 로봇인 캐런을 주인공 피터가 부르는 명칭 ‘Suit Lady’는 피터의 예의 바른 성격과 배역을 맡은 톰 홀랜드의 수많은 누나 팬들을 고려해 ‘수트 누나’로 번역했다.

황 번역가는 번역 후기에서 “대사가 담백한데 코믹한 느낌을 준다고 오버하다간 대참사가 벌어진다는 걸 잘 안다”며 “자막이라는 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여서 결정되는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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