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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선동열 박찬호 이정후…45년 스타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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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선동열 박찬호 이정후…45년 스타의 산실

입력
2018.08.10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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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 15일 개막 

 국내 유일 지역 예선 없는 토너먼트 

 타격상 장효조ㆍ노히트노런 선동열… 

 명승부 속출 야구인 사랑 독차지 

1985년 제1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와 광주상고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부산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5년 제1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와 광주상고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부산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46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개막(15일)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1954년 창간한 한국일보는 창간 이벤트로 ‘육ㆍ공군 야구 대제전’을 개최했고 ‘전국도시대항야구대회’ ‘재일교포학생야구단방문경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 초청경기’ 등을 통해 사명(社名)을 알리고 독자층을 넓혀갔다. 이렇듯 축적된 야구이벤트 경험을 살려 고교야구가 인기 절정에 달하던 1971년 ‘봉황대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창설했다. 한국일보는 널리 고교야구의 최정상을 가리는 대회라는 의미로 대통령의 문장(紋章) 인 ‘봉황’을 대회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45년(2011~12년 중단)간 국내 유일의 지역 예선 없는 통합 토너먼트 대회로 야구인들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했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인 야구선수의 ‘선수 출신’ 신분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등록한 사실 여부로 결정할 만큼 권위를 인정 받는 대회다.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기에 다른 대회에서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무명 선수들에겐 선망의 무대였고, 숱한 이변과 명승부가 연출되며 ‘전국구 스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1971년 1회 대회 대광고 유격수로 팀을 결승까지 올려 놓은 김재박, 1973년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 1980년 경기고와 1회전에서 당시 서울운동장 제1호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광주일고 선동열 등이 초창기 봉황대기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도 공주고 3학년 때인 1991년 제21회 대회 2회전에서 광주일고에 단 2안타만 내 주며 완봉승을 거둬 인연이 깊다.

봉황대기가 배출한 ‘막내 스타’는 이정후(넥센)다. 휘문고 1학년이던 2014년 42회 대회와 3학년인 2016년 44회 대회에서 두 번이나 정상에 오른 그는 “나와 잘 맞았던 대회이고 지금의 나를 만든 대회”라며 봉황대기와 각별한 인연을 떠올렸다.

봉황대기 로고
봉황대기 로고

봉황대기의 또 다른 특징은 여름방학 중인 8월에 개최된다는 점이다. 방학을 이용해 일본 거주 재일교포 학생들의 참여도 가능했다. 1974년부터 재일교포 팀이 결성돼 고국의 대회에 참가해왔다. 대한야구협회에 보관된 역대 봉황대기 참가 선수 명단을 살펴 보면 현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감독인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1986년 제16회 대회에 재일동포 야구단으로 모국을 방문했다. 한국명 김지헌으로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 3세다. 현역 시절 1,492경기에서 1만3,686이닝 무교체 출전의 신기록을 보유한 ‘철인’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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