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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운전대를 믿고 맡겼는데

입력
2017.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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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구상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구상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6년 전 면허를 갓 따고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다. 그저 차선을 따라가면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만 적절히 밟으면 되는 줄 알았다.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날 때의 짜릿함이란. 하지만 도로에 접어들자 주변을 에워싼 차들이 왜 그리 크게 보이던지. 차선 한번 바꾸는데 진땀을 흘리다 요란하게 빵빵대는 뒤차의 경적소리를 듣고서야 깜빡이를 켜곤 했다. 그렇게 머리 따로, 몸 따로 헤매다가 황급히 집으로 방향을 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보운전의 시행착오가 이럴진대, 골칫덩이 북한을 상대로 운전대를 잡으려면 고난도의 운전실력이 필요할 터. 한달 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며 자청해서 운전석에 오를 때 막연히 떠오른 생각이었다.

일단 기세는 좋았다. 베를린 구상은 모터쇼마냥 휘황찬란한 청사진으로 가득했고, 70%를 웃도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뒷배 삼아 연료탱크를 가득 채웠으니 장거리 주행에도 문제없어 보였다. 번쩍거리는 새 차에 시동을 걸어 미국과 중국, 북한을 향해 존재감을 알리듯 굉음을 내는 장면을 지켜보며 앞으로 펼쳐질 레이싱에 관심이 집중됐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차가 대체 어디로 가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우토반의 쾌속질주를 바란 건 아니지만 연거푸 갈지자 운행을 하면서 승객들은 찜찜한 기분에 어리둥절하다. 가뜩이나 도로 상황마저 최악이다. 옆 차선에서 달리는 북한은 온갖 난폭운전을 일삼고, 미국은 저만치 앞서가며 빨리 오라고 독촉하고, 중국은 쉴새 없이 경고등을 켜면서 차선을 바꾸라고 위협하고 있으니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은 급가속과 급제동의 결정판이다. 운전시험으로 따지면 낙제를 면하기 어렵다. 절차를 거치겠다며 호기롭게 환경영향평가를 강조하더니, 하루도 안돼 남은 발사대 4기를 성주 골프장 안에 들여놓겠다고 호들갑이다. 한밤에 북한이 미사일로 뒤통수를 때렸다고는 하지만, 며칠 전부터 발사징후를 포착했다면서도 대응은 어설프다. 더구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주한미군의 사드로 요격하는 건 무리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진저리를 내는 게 환경영향평가인데, 북한의 ICBM 발사 전후로 굳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급하니 일방통행도 감수하는 것 같다. 대북 연락채널이나 물밑 사전조율 없이, 그것도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던지듯 회담을 제의한 건 편의주의로 비친다. 판문점에서 확성기로 떠들거나 대북제안을 담은 종이에 돌을 매달아 북측 병사에게 던지면서 반응을 살폈던 전례도 있다. 이제는 무시하는 북한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하도 대화가 안되니까 그런 핑계라도 대는 것이죠.” 정부 당국자의 푸념이다.

그러면서 북한을 우리 힘으로 혼내주겠단다. 딱히 수단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대화를 제의하고 독자제재에 나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깜빡이를 사방으로 켜면서 차선은 바꾸지 않으니 승객은 물론 주변 운전자들도 도통 모르겠단다.

운전의 최고봉은 방어운전이다. 정속으로 주행하면서 다른 운전자의 행동과 도로의 흐름에 맞추는 게 우선이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차로의 구멍 난 바닥은 메우고, 길이 없다면 도로부터 깔고 운전하는 게 순리다. 운전대를 잡은 기분에 취해 내달리기만 했다간 차의 수명도 짧아지고 승객들의 불안감만 커질 것이다.

16년 된 차를 바꿀 때가 이미 지났지만, 가죽이 헤져 너덜해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손에 착 감기는 익숙한 느낌에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두 아들놈은 아빠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제일 좋다니 아직은 쓸만한가 보다. 문 대통령이 속히 차를 길들이고, 운전석에서 여유 있게 드라이브를 즐기길 바란다. 적어도 장롱면허는 아닐 테니까.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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