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MB정부서 등장한 멘토
당시엔 오랜 정치적 인연 통한
정치적 스승.지주 의미 강해
2011년 안철수 정치 입문 이후
윤여준,김종인 등 유행처럼 번져
“3金시대 같은 리더십 부재가 원인
동지보단 인재영입 수단 변질” 등
비판 시각 속 정치 혐오 부작용 우려
한때 박근혜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불렸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더민주의 4ㆍ13 총선을 총지휘하는 키를 잡으면서 ‘멘토 정치’가 전면화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 역시 안 의원의 멘토로 불린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아예 멘토 투톱 체제로 가동된 상태다. 그간 정치ㆍ경제적 조언과 자문을 해주며 ‘정치인의 후원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던 멘토가 정치 최일선에서 선장 역할에까지 나선 것이다.
그러나 멘토가 아예 당의 간판까지 맡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멘토 정치의 부상이 정치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치 리더의 역할까지 대체하면서 정치 리더십 실종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는 것이다.
여야 말 바꿔 타며 정치 전면에 나선 멘토
‘3김 시대’ 정치권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멘토라는 말은 노무현ㆍ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서서히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멘토로 송기인 신부와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언급됐고 이명박 정부 때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멘토로 거론됐다. 이 시기의 멘토는 유력 정치인과 오랜 정치적 인연을 맺으며 조언을 해주던 관계로 ‘정치적 스승’ 또는 ‘정신적 지주’의 의미가 강했다. 송 신부는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들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세례 미사를 집전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최 전 방통위원장은 1970년대 이상득 전 의원의 소개로 이 전 대통령을 만나 호형호제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유력 정치인의 ‘스승’으로 정치권에서 간간히 회자되던 멘토는 2011년 안철수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시사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후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안 의원의 멘토로 윤여준, 김종인, 법륜스님 등이 소개됐고 안 의원도 “내 멘토가 300명”이라며 자신의 두터운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동지’의 의미까지 담겼던 멘토의 성격은 정치적 인연과 무관하게 ‘과외 교사’이미지가 부각되면서 크게 달려졌다. 안 의원의 멘토로 불렸던 이들은 안 의원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을 뿐더러 정치적 동지로 보기에도 어색한 관계였다. 이후 김종인 위원장이 안 의원을 떠나 대통령 후보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 곁으로 옮겨 ‘경제 교사’ 역할을 자임하면서 멘토는 여야를 넘나들며 주유천하(周遊天下ㆍ온 세상 곳곳을 두로 돌아다니며 유랑함) 하는 모양새도 갖추게 됐다. 급기야 멘토가 ‘교사’ 자리를 넘어 당의 간판 자리까지 꿰찬 것이다.
멘토 정치는 정치력 부재, 리더십 실종 반영
이는 멘토 대신 가신을 거느리던 3김 정치 시대와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37년간 보좌했던 김기수 비서관은 “YS는 5ㆍ16, YH사건, 5ㆍ18, 12ㆍ6 등 역사적 대치 상황에서 홀로 개척해 나갔다”며 “정치의 리더십은 그렇게 시대를 끌고 가는 정치인의 자력과 결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에 직면해 자기 희생이 예상되더라도 스스로 돌파하는 게 정치 지도자의 제1 덕목”이라며 “자신의 비전으로 사람을 모아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멘토를 찾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제 멘토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안철수 의원이나 문재인 더민주 대표 등 야권 리더들의 정치적 경험 부족이나 극심한 내부 갈등으로 빚어진 리더십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스스로 멘토가 돼 국민을 이끌어야 할 대선 후보급 정치인들이 멘토를 내세우는 걸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한 정치인은 “문 대표와 안 의원이 아무래도 초선의원이다 보니 정치력이 부재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재 영입 전략으로 변질된 멘토 정치
정치 리더들이 자신의 정치력을 보완하기 위해 멘토를 활용하다 보니, 멘토 정치가 이벤트성 인재 영입의 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멘토가 여야를 넘나들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이란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선거의 승패는 중도 표를 얼마나 끌어왔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상대 진영도 우리 편으로 끌어오는 게 당연하다”며 “상대 멘토 영입만큼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유용한 흥행 카드도 없다”고 말했다. 일례로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멘토로 꼽는 것을 정치 전략으로 즐겨 활용한다. 중립적 성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대 지지자를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멘토 정치가 정치적 게임으로 활용될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멘토 정치가 보수ㆍ진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을 통합해 가는 과정의 하나가 된다면 긍정적 결과를 낼 것”이라면서도 “반면 멘토로 모셔온 인사들이 가진 철학이나 정책을 수용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대중적 인지도나 중도적 이미지를 이용해 표 확장만 꾀한다면 멘토 정치도 빛이 바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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