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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온전한 삶을 위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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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온전한 삶을 위한 집

입력
2017.04.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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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에서 살 거냐는 소년의 말에 데지레 아줌마가 깔깔 웃는다. “아니, 가끔가다 이렇게 오면 좋을 것 같아서.” 물론이다. 울타리 안의 아프리카는 ‘지금 이곳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필요한 거니까. 비룡소 제공
흙집에서 살 거냐는 소년의 말에 데지레 아줌마가 깔깔 웃는다. “아니, 가끔가다 이렇게 오면 좋을 것 같아서.” 물론이다. 울타리 안의 아프리카는 ‘지금 이곳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필요한 거니까. 비룡소 제공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

바르트 무야르트 글, 안나 회그룬드 그림ㆍ최선경 옮김

비룡소 발행ㆍ36쪽ㆍ8,500원

‘이주’는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한 세기 전만해도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나고 자라 늙어 죽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이제는 지구촌 곳곳을 옮겨 다니며 살아간다. 꿈을 찾아서, 일자리를 찾아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혹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고 터전을 바꾼다.

이주는 서로 다른 문화가 조우하는 현장이다. 역사는 이런 만남과 뒤섞임이 문명 발전의 원천임을 증명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앞 현실 속 만남은 대개 평등하지 않고 종종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삐걱거린다. 선주민들은 익숙한 일상을 흔드는 낯선 이들이 달갑지 않고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걱정스러우며, 이주민들은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긍지를 내놓아야 할 위기에 몰린다.

서정적인 제목이 눈길을 끄는 그림책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의 무대는 네덜란드의 연립주택 단지다. 빨간 벽돌 이층집들이 나란히 늘어섰다. 문은 왼쪽, 창문은 오른쪽, 집 뒤에는 뜰, 뜰에는 창고와 작은 텃밭. 크기도 구조도 똑같은 집에서 고만고만한 일상을 보내는 고만고만한 이들 틈에 낯선 이가 끼어들었다. 아프리카에서 온 데지레 아줌마, 결혼 이주 여성이다.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른 이 여인은 쌀알 틈에 낀 뉘와 같다. 남편은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고 넷이나 되는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이래저래 이웃과 별 교류도 없다. 잡풀 무성한 뜰에 앉아 묵묵히 해바라기하는 아줌마의 얼굴이 우울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지레 아줌마가 뒤뜰 창고를 뜯어내면서 이웃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옆집 소년과의 우정도 시작된다. 풀기 없던 아줌마가 장대비를 맞으며 창고를 부수고, 이웃사람들의 핀잔과 손가락질 속에서 구덩이를 파고 진흙을 이기고, 진흙 반죽을 쌓아올리며 활기를 되찾는 과정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고향 옷으로 갈아입고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일하는 모습, 울타리 너머 소년에게 미소 짓는 모습은 왠지 뭉클하다.

창고를 부순 자리에 세운 작은 진흙집, 카메룬의 고향집을 닮은 오두막에서 데지레 아줌마는 소년과 차를 마신다. 이제부턴 그 집에서 살 거냐는 아이 말에 깔깔 웃는다. “아니, 가끔가다 이렇게 오면 좋을 것 같아서.” 물론이다. 뒤뜰의 진흙집, 울타리 안의 아프리카는 ‘지금 이곳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필요한 거니까.

자존감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아프리카 여인과 편견 없는 옆집 소년의 교감, 이들이 나누는 우정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갈등을 푸는 열쇠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일방적인 순응이나 동화가 아닌 공감과 연대라는 걸 잊지 말자.

이 땅의 수많은 데지레 아줌마들과 그들의 뒤뜰을 생각한다.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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