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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근로혁명’ 길을 묻다] “최저임금 인상ㆍ근로시간 단축 다 좋지만…이대론 못 버텨”

입력
2018.04.09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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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주물업 대표 하소연

주52시간 지키려면 직원 30% 더 뽑아야

“인력난에 일할 사람이 있을지…”

#근로자들도 볼멘소리

하루 2교대를 3교대로 바꾸면

월급 30% 줄어 부업 나서야 할 판

#정부 아직 구체적 대안 못 내놔

“유예기간에 노력해야…” 답변만

중소업체들 “현장 목소리 반영을”

<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2004년 ‘주5일 근무제’ 도입 이후 또 한번 우리나라 근로 관행이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됐다. 시행이 코앞이지만 찬반은 여전히 거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장 근로시간과 바닥권인 노동생산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계기라는 긍정론과, 장기침체에 빠진 중소ㆍ영세 사업자의 고충을 외면한 성급한 정책이란 부정론이 팽팽히 맞선다. 한국일보는 중소제조업 자영업 스타트업 대기업 연구소 등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현장을 찾아 ‘제2의 근로혁명’ 준비상황을 4회에 걸쳐 점검하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한다.

경남 창원시에서 직원 수 200명 규모의 주물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적용되는 2020년 이후 공장을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답답하다. 주물업 특성상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공장을 온종일 돌리려면 현재보다 직원을 30% 이상 더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을 뽑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문제지만, 만성적 인력난 속에서 그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뽑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려 해도 직원 10명당 1명꼴인 외국인 고용 쿼터제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한 철강 가공업체에서 직원이 자동화 절삭기에서 나온 제품을 옮기고 있다. 이 업체는 5억원대 자동화 절삭기 2대를 2년 전 도입한 뒤, 직원을 8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민재용 기자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한 철강 가공업체에서 직원이 자동화 절삭기에서 나온 제품을 옮기고 있다. 이 업체는 5억원대 자동화 절삭기 2대를 2년 전 도입한 뒤, 직원을 8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민재용 기자

A대표는 “주물작업 필수 장비인 전기로를 껐다가 다시 켜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현재 직원으로 공장을 18시간 정도만 가동한다면, 생산량이 줄어들어 회사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상태가 양호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공장을 자동화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있는 B금속 가공업체는 대당 5억원에 달하는 자동화 절삭기계 2대를 2년 전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초기 구매 비용이 다소 부담이긴 했지만 기계가 직원 수 2, 3명 몫을 거뜬히 해내기 때문에 올해 기계 2대를 추가로 주문한 상태다. 대신 한때 8명이 일하던 생산현장에는 현재 4명만이 일하고 있다. 기계가 추가로 도입되면 직원 수를 더 줄일 예정이다.

B사 대표는 “기계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영향을 안 받기 때문에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선호하게 된다”며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는 건 현장에서 보면 너무 단편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라고 해서 근로시간 단축을 무조건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인천의 주물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 C씨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적용되는 2020년 이후 현재 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기사 등 추가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하루 2교대 근무를 하는 C씨는 각종 수당 등을 포함해 현재 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주택담보 대출금과 두 자녀 학원비 등 고정적인 지출을 고려하면 한달 생활비로 빠듯하다.

C씨는 “하루 2교대 근무가 3교대로 바뀌면 급여가 30% 정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사람을 더 뽑든, 공장 가동을 중단하든 내가 받는 월급이 줄어드는 건 확실해서 집사람과 이 문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말했다.

주물과 표면처리, 금속가공 등은 일명 ‘뿌리산업’으로 불린다. 국내 제조업 품질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핵심산업이지만 동시에 노동환경이 가장 열악한 업종이기도 하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호소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 숙식비 등을 포함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3D 업종의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 ▦법 적용 유예를 받는 특례 업체 인정 등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은 직원 수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 적용 유예기간을 줬다. 이 기간에 여러 노력을 한다면 현장에서 호소하는 부작용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을 뿐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이기만 한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정부의 정책 추진 주요 목적인 일자리 창출 등에 하등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대로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주물 업계를 다 망하라는 것”이라며 “돈을 주고도 사람을 고용할 수 없는 주물업계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최소한 공장 가동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의현 한국금속가공협동조합 이사장도 “근로자를 잘 살게 하려는 정부 정책 추진 방향은 맞고 중소기업계도 거기에 동의를 한다”며 “그러나 현장에서 호소하는 고통 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책 추진 효과는 반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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