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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다음에

입력
2015.08.3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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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려워요’라고 내가 답하면, ‘그럼 다음에는 꼭 한잔해요’라고 말하던 술꾼들이 있었지. 그 술꾼들이 나와 연애하려고 그리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음에 마실 술에 나는 벌써 설레며 취했지.

다음에 취해서 당신을 생각해보면, 당신이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많았지. 다음에는 반듯한 양복 입고 가죽가방 들고 출근해보고 싶었지. 휴일에는 악기라도 하나 배우고 싶었지. 다음에는 연인에게 반짝이는 선물도 사주고, 다음에는 어머니께 큰 집도 사드리고 싶었지. 다음 계절의 어느 날에는 결근을 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

다음에는 나에게 더 잘 하고 나를 더 잘 사랑하고, 다음에는 나와 더 잘 이별하고 나를 더 잘 잊고 싶었지. 다음에는, 이라는 말로 돌탑처럼 자꾸만 무너지는 소망의 순간들을 붙들고 서있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다음에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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