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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황석영 그림자에 가명으로 문학상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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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황석영 그림자에 가명으로 문학상 응모"

입력
2017.12.17 16: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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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편 '알제리의 유령들'로 등단한 소설가 황여정. 문학동네 제공
경장편 '알제리의 유령들'로 등단한 소설가 황여정. 문학동네 제공

한 해에도 수십 명씩 신인들이 배출되는 요즘 문학계에서 등단 자체가 화제가 된 작가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하나인 황석영 작가의 딸, 황여정(43) 작가다. 대형출판사 김영사에서 편집자로 근무 중인 그는 몇 년 전 아버지 황 작가가 장편 ‘여울물 소리’를 본보와 한 출판사에 공동으로 연재했을 당시 소설을 편집했다.

유명인 딸이라 데뷔도 쉬웠을 거라는 편견은 접자. 황 작가는 지난 10월 당선된 문학동네소설상에 가장 친한 대학친구의 이름을 빌려 응모했고, 당선 확정 후 실명을 밝혔다. 24세 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20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데뷔작인 경장편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이 출간된 지 일주일만인 15일 경기 부천시 한 카페에서 만난 황 작가는 “남의 책 나오는 걸 많이 봤는데도 제 책 나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설레고 낯설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다가도 내 손을 떠났구나 싶다”고 말했다. 들뜬 기분은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시상식장에서 딸에게 “어른 됐구나” 칭찬 한마디 남긴 아버지는 딸이 가고 없는 뒤풀이에 새벽까지 남아 딸 작품 자랑을 했다는 후문이다. 황 작가는 “자식이 자기 하고 싶은 걸 하게 돼서 기뻐하는 이상으로 기뻐하시는 걸 보고 내심 바라셨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인 홍희담 작가는 주변에 돌릴 용도로 황씨의 책을 50권이나 구매했단다.

데뷔 전 아버지에게 소설을 보인 건 딱 두 번이다. 처음 쓴 단편을 보고 “너 되겠다”했던 아버지는 그 후 수년 간 자신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자 다시 “요즘 쓴 소설 보내보라”고 했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단다. “일주일 후에 제가 전화 드려 ‘소설 어떠셨어요?’했더니 가만 계시다가 ‘얼마 전에도 심사했는데, 응모작 중에 이런 풍 소설 너무 많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풍이 뭐냐고 물었더니 ‘너무 개인적인, 자기 얘기 풀어놓은 감정 충만한 소설’이라고. 정작 무슨 얘기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마음이 덜컥해 ‘열심히 쓸게요’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황여정 작가는 “황석영 딸이라 관심 받는 게 사실”이라며 “(유명 작가 딸인 한계를) 안고 가야 된다. 부담스러웠으면 소설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현 제공
황여정 작가는 “황석영 딸이라 관심 받는 게 사실”이라며 “(유명 작가 딸인 한계를) 안고 가야 된다. 부담스러웠으면 소설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현 제공

‘내 길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에 수년 전 공모전 응모를 그만두었다가, 2년 전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도중에 이야기가 멈추면 그대로 그만둘 생각으로” 더디게, “몇 달씩은 아예 들여다보지 않다가 다시 쓰길 반복”했는데, 신기하게도 이 작품만큼은 “어제 쓴 것처럼” 이야기가 이어지더라고. 그는 “쓰면서 소설과 저의 정서적 거리감이 이렇게 밀착된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연극인 이모와 삼촌에 둘러싸인 유년시절, ‘그날’(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후 인생이 꼬여버린 이들의 후유증 등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변형돼 담겼다.

4부로 나뉜 연작소설 형식의 ‘알제리의 유령들’은 각 부마다 화자를 바꿔가며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을 둘러싼 기억의 단편들을 들려준다. 희곡을 쓴 연극인 부부의 딸 율, 연극 동료 부부의 아들 징의 이야기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사라진 희곡을 찾는 연극 연출가 지망생 철수, 율의 부모와 연극판을 누빈 탁오수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희곡과 율의 부모들을 둘러싼 과거를 그린다.

상처로 얼룩진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며 사랑에 빠진 율과 징의 성장기를 들려주는 1부는 여백 많은 문장으로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희곡 탄생에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를 등장시켜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는 3부, 희곡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인생이 꼬여버린 4부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이 소설이 “멋지게 짜인 완성도 높은 소설”(백지은 문학평론가)이라는 데에 동의하게 된다.

문학동네소설상 당선으로 장편소설 1편과 소설집 1권의 출판을 추가로 계약했다. 황 작가는 “막연하게 들뜨고 의욕이 샘솟는 시기”라고 했다. 그는 “써놓은 게 있어서 다행”이라며 “데뷔작 분량의 경장편 5편, 950장 분량의 장편 2편, 800장 분량의 장편 몇 편과 단편들이 있다”고도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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