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창조경제가 뭐길래… 대기업은 지금 '방학숙제'에 끙끙

입력
2015.02.09 13:51
0 0

“먼저 숙제를 한 기업들이 결과물을 보니 부담이 갈수록 커집니다. 빨리 하긴 해야 하는데 당장 실적도 좋지 않으니 참 난감할 뿐입니다.”

지난주 대화를 나눈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가 밀린 학생 같았습니다. 그가 말한 숙제는 ‘창조경제혁신센터(혁신센터)’입니다.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지난해 18개 주요기업들이 전국 8도를 나눠 지방자치단체와 손 잡고 박근혜 정부가 역점 사업을 추진해 온 창조경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며 각자 테마를 정해 혁신센터를 짓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대구에 IT 전자 중심으로 문을 연 삼성그룹의 혁신센터를 시작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의 SK(대전), 탄소클러스터의 효성(전북 전주), 크리에이티브랩의 삼성(경북 구미), 순수민간창조경제혁신센터의 포스코(경북 포항) 등이 지난해 혁신센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 들어서는 수소차 허브의 현대차그룹(광주)에 이어 지난주 바이오 에너지 뷰티를 주제로 한 LG(충북 오창)까지 일단 숙제를 마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충북지식산업진흥원에서 열린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찰하고 있는 가운데 구본무회장이 전시 뷰티존에서 박대통령에게 최근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화장품에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충북지식산업진흥원에서 열린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찰하고 있는 가운데 구본무회장이 전시 뷰티존에서 박대통령에게 최근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화장품에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이제 곧 절반(9개)이 다가오는 이 순간. 숙제를 아직 못한 기업들은 심란합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뒤로 갈수록 혁신센터에 대한 고민도 더 많이 한 것 같고 앞에 했던 기업과 차별화 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고 평가했습니다.

LG그룹은 혁신센터를 통해 무려 2만9,000건 넘는 특허를 중소ㆍ벤처기업에 풀어 상생협력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특허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LG화학 등 8개 LG 계열사가 보유한 2만7,396건과 16개 정부출연기관(출연연)이 가진 1,565건 등입니다. 특히 LG는 이중 3,058건의 특허를 무상으로 벤처ㆍ중소기업에 양도할 계획입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광주에 2개의 서로 다른 주제로 ‘쌍둥이’ 혁신센터를 열었습니다. 자동차 관련 1,000건 넘는 미공개 특허를 일반에 공개하며 자동차 관련 창업 아이디어 창출에서부터 사업화까지 돕고, 좋은 아이디어는 양산 차량용 기술, 제품 개발, 사업화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까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광주 도심지역에 설립되는 제2센터는 소상공인, 시장 상인, 주민 등 서민 주도형으로 운영되며 서민생활창조경제기금 100억 원을 통해 영세 소상공인과 생활 창업을 돕는다고 했는데요. 삼성은 이미 대구에 이어 경북까지 2개의 센터를 열어 재계 1위 이름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 되는 ‘한 방’이 없다면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숙제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숙제를 마냥 미룰 수 만도 없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는 센터의 틀을 갖춰서 외부에 공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더구나 센터를 열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꼬박꼬박 참석해 내용을 점검하니 그룹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겠죠. 특히나 최악의 실적을 이어가면서 여유가 없는 기업 관계자들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습니다.

어쨌든 숙제를 해야 하는 기업들은 해당 지자체에 직원을 파견 보내 지자체 관계자들과 끊임 없이 작전 회의를 계속하는가 하면 다른 기업들의 준비 상황과 비장의 카드를 파악하느라 분주합니다. 기자 역시 혁신센터가 하나 문을 열 때마다 그 반응을 듣느라 여러 기업 관계자들에게서 ‘역 취재’를 당하기도 하는데요.

좋은 쪽으로 보자면 이런 분주함은 선의의 경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혁신센터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하나 걱정은 기업들이 일단 문을 여는 데만 공을 들이고 열중하다 보니 정작 문을 열고 나서는 그 후속 조치에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애초에 이 센터가 100%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그 걱정을 키우게 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처음 중앙 정부와 지자체 중심으로 추진하던 혁신센터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대기업의 참여를 독려한 측면이 있다”며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한 기업들이 많은 만큼 벌써부터 정권이 끝나도 얼마나 동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물음표를 다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숙제를 못한 기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CJ(서울), 한진(인천), SK(세종시), KT(경기), 한화(충남), GS(전남), 네이버(강원), 두산(경남), 현대중공업(울산), 롯데(부산), 다음(제주).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