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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피디아] 우아한 사생활을 충족 “참가비 아깝지 않죠”

입력
2017.03.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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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돈내고 독후감을 쓸까

참가비 비쌀수록 참석률 높아져

짧게는 한번, 길게는 넉 달만 운영

*2030세대 새 놀이문화로

책 안보는 문화 속 강제독서 가능

자기 생각 함께 나누며 힐링얻어

28일 저녁 열린 북카페 북티크의 독서모임 '챌린지'에 참석한 회원들이 읽을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매주 참석할 때마다 회비를 걷는 유료독서모임이지만 다시 찾는 회원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북티크 제공
28일 저녁 열린 북카페 북티크의 독서모임 '챌린지'에 참석한 회원들이 읽을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매주 참석할 때마다 회비를 걷는 유료독서모임이지만 다시 찾는 회원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북티크 제공

28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북카페 북티크. 책 2,3권씩을 손에 든 10여명이 카페 한 켠 탁자에 둘러앉았다. 각자 일주일 간 읽은 책의 소감을 나누는 독서모임 ‘챌린지’로 북티크가 운영하는 유료 독서모임의 입문 단계 자리.

오규빈씨가 소설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소개한다. “주인공이 정신과의사인데, 돈 많고 남들 부러워하는 직업의 괜찮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속으로 ‘별 고민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와요.” 맞은편 김다혜씨가 “직업병이 돋아서…”라며 손을 든다. “제가 심리상담사인데요, 훈련 때 상담자의 심리상태를 평가하지 않는 연습을 많이 해요. 사람 따라 행복, 불행을 느끼는 부분이 달라 예단할 수 없다는 거죠.” 정구철씨는 칼 세이건의 ‘숨결이 바람될 때’를 10여분에 걸쳐 자세하게 들려주며 “죽음에 대한 호기심, 삶에 대한 열정,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11명의 참가자가 각자 책 읽은 소감을 나누는 모임은 9시 반을 훌쩍 넘어 끝났다.

이 모임의 한 달 4회 참가비가 5만원이다. ‘누가 돈 내고 독후감 써올까’ 싶지만 이달 모임에만 참가 신청자가 20명을 넘어 2개로 나눠야 했다. 정성문 북티크 매니저는 “2015년 북카페를 개업하며 독서모임을 만들었는데 조금씩 회원이 늘었다”며 “현재 모임은 10여개, 회원은 15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북카페 북티크에서 열린 독서모임 '챌린지'에 참석한 회원들이 읽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료 독서모임은 입문 단계가 가장 인기가 많아 2~3개 반으로 나눠 운영된다. 북티크 제공
지난 2월 북카페 북티크에서 열린 독서모임 '챌린지'에 참석한 회원들이 읽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료 독서모임은 입문 단계가 가장 인기가 많아 2~3개 반으로 나눠 운영된다. 북티크 제공

유료 독서모임이 20~30대 직장인들의 새 놀이문화로 유행하고 있다. 2~3년 전부터 북티크를 비롯해 ‘최인아책방’, ‘퇴근길 책한잔’ 등 북카페를 겸한 독립서점들이 유료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탔다. 2015년 독서모임을 수익모델로 한 기업 트레바리가 강남 일대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트레바리는 4개월 이용에 19만~29만원의 만만치 않은 비용을 내지만 2015년 9월 4개 클럽, 회원 80명으로 시작해 올해 1월 기준 70개 클럽, 회원 1,110명으로 덩치를 키웠다.

돈 내면 참석률 올라

정성문 매니저는 “모임을 처음에는 공짜로 운영했는데 10명 등록하고 실제로 4명이 참석하는 등 ‘노쇼’가 많아 유료로 바꾸니 참석률이 급격히 올랐다”고 말했다. 돈이 책임감을 만들고, 책임감이 독서습관을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유료 독서모임을 “돈 내봤자 책 안 읽고 독후감 안 쓰면 참여할 수 없는 ‘변태’ 같은 서비스”라고 정의하며 “철저한 간섭으로 회원들에게 지적 쾌감을 주는 게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모임마다 차이는 있지만, 재등록 비율이 평균 절반을 넘는다.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는 회비의 일부를 수고비로 받기도 한다. 정 매니저는 “리더를 ‘북트레이너’라고 말한다”며 “헬스 트레이너처럼 회원에게 ‘독서 독촉’ 연락을 보내고 토론주제도 상의하며 습관을 들이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단기간 운영이 특징이다. 업체마다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과 참석률을 감안해 짧게 한번, 길게는 넉 달 만 운영하고 다음 ‘시즌’으로 회원을 재모집한다. 참가비가 높을수록 강제 사항이 많고 참석률, 재회원률도 높은 게 특징이다. 트레바리의 경우 독후감을 써오지 않으면 모임에 참가할 수 없다.

트레바리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이콘B' 회원들이 카페에 모여 책을 함께 읽고 있다. 트레바리 제공
트레바리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이콘B' 회원들이 카페에 모여 책을 함께 읽고 있다. 트레바리 제공

책은 구실… 감정 토로하며 치유

인기 이유가 뭘까. 출판계 관계자들은 인정욕구, 지적이고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원하는 젊은 감성 등을 꼽았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의 장동석 주간은 “인문학 열풍과 자기 의견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독서모임이 정보, 인맥의 창구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한국사회 모임의 대부분이 술자리로 끝나서 우아한 사생활을 원하는 젊은 층 취향과 맞지 않다”며 “책은 오프라인 모임을 만드는 훌륭한 소셜 오브젝트(사회적 대상)”라고 평했다.

도서모임 참가자들의 반응은 이런 분석과 사뭇 다르다. ‘책 읽지 않은 문화’ 때문에 책 정보를 얻거나 책 얘기를 할 수 없어 모임에 나간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월부터 북티크 ‘챌린지’에 참가하는 플로리스트 김지혜(30)씨는 “주변에 책을 추천 받을 수도, 책에 대해 얘기할 수도 없어 모임에 참석한다”며 “매주 책을 소개 받고, 반강제적으로 읽으며 습관을 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수직적인 한국사회에서 눈치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3월 ‘챌린지’ 리더를 맡은 직장인 박규리(29)씨는 “이해관계가 없어 의견을 말할 때 눈치보지 않는다”며 “감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윤수영 대표는 “타인과 생각을 나누는 건 시간, 감정이 드는 일인데 예전에는 누군가 총대 메고 모임을 주도했다”며 “지금 직장인들은 욕구는 있지만 여지가 없어 돈 내고 이런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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