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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

등록 : 2017.05.30 15:27
수정 : 2017.05.31 18:05

[오종남의 행복세상] 고(故) 현홍주 대사님을 보내며

등록 : 2017.05.30 15:27
수정 : 2017.05.31 18:05

헌법재판소 설치와 탄핵심판 기능 역설

공직 마친 후 로펌서도 늘 국익을 걱정

인생의 멘토를 잃은 슬픔에 두 손 모아

현행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것이다. 당시 개정안을 준비하는 팀에서는 헌법재판소 설치를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대법원도 별도의 헌법재판소 설치에 반대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에 대통령 탄핵심판 기능을 부여하는 것에는 더욱 반대가 심했다. 그때 한 분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판하기 위한 헌법재판소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설사 사용할 일이 없을지라도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기능을 갖게 하자고 역설했다. 결국 그의 의견은 개정 헌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당시 그 분이 고 현홍주 변호사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날, 당시에는 결코 사용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 대통령 탄핵 규정에 따라 30년 후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는 것을 보며 고인은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술회했다.

사실 고인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이 극에 달했을 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신 분이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체육관 선거보다는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더 좋고, 설사 낙선하더라도 민주화를 이룩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다”는 명분을 들어 현행 헌법의 탄생이 가능하게 하신 분이다.

지난 5월 26일, 현홍주 대사께서 별세했다. 고인은 1968년 검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국회의원, 법제처장을 거쳐 1990년 주유엔 대표부 대사에 임명되어 당시 국가적 대업인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성공적으로 준비하였다. 이어서 주미 대사로 옮겨 2년 간 근무하다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1993년 공직을 마무리하고 김&장 법률사무소에 변호사로 합류했다. 그 후 김&장에서 한국에 투자한 다국적기업의 경영자문을 맡아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다. 고인은 로펌에서 일하면서 공직생활 때와 다름없이 외국 클라이언트의 이익뿐만 아니라 나라의 이익도 동시에 걱정하는 자세로 일관하여 내외국인으로부터 두루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필자는 2006년 말 IMF 상임이사를 끝으로 공직을 마무리하고 김&장에 합류하면서 고인과 인연을 맺었다. 필자는 50대 중반에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끝내고 두려운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사회의 초년병인 필자에게 맡겨진 역할은 고인이 외국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곁에서 경제 분야 브리핑을 돕는 일이었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모시고 일하면서 고인에게 배운 지혜는 언제나 고객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또한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진리다. 고인은 결코 사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소의를 위해 대의를 희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고인은 클라이언트에게는 신뢰받는 조언자였고, 후배들에게는 존경 받는 멘토였다.

필자에게는 인생의 멘토가 두 분 계신다. 첫 번째 멘토는 초등학교 은사이면서 공직생활 내내 상사로 모신 고 강봉균 장관이고, 두 번째 멘토는 고 현홍주 대사다. 공직생활을 대과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멘토 덕분이고, 퇴직 후 민간부문에서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째 멘토 덕분이다. 평생에 롤 모델(role model)로 삼을 만한 멘토를 한 분 만나기도 어려운데, 필자에게는 그런 분이 두 분이나 계셨으니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인가?

존경하는 멘토를 갖는 행복을 누리기만 하다가 금년 들어 한꺼번에 두 분의 멘토를 잃는 슬픔을 맛본다. 연초에 첫 번째 멘토를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두 번째 멘토인 현홍주 대사님을 잃게 되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슬픔과 빈자리를 실감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필자는 이제 그 분들로부터 받은 은덕을 조금이라도 갚는 심정으로 후배들에게 성심성의껏 멘토링을 해주리라 다짐하며 눈물을 삼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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