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05.06 04:40
수정 : 2017.07.01 15:50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아톰이 있는 나라, 아시모 만든 로봇강국 되다

등록 : 2017.05.06 04:40
수정 : 2017.07.01 15:50

<9>데즈카 오사무의 아톰

#1

도구 아닌 아들로 만들어진 첫 로봇

로봇공학 가장 앞선 일본 만들어

로봇에 대한 거부ㆍ경계심도 없어

#2

패전 후 연재, 첫 TV 애니로 방영

로봇인권 주장하며 차별, 공존 그려

소수자 아우르는 보편 메시지 담아

2003년 일본 로봇전시회 로보덱스에 등장한 아톰 모형. 2003년 4월 7일 작품 속 아톰의 생일을 맞아 아톰 모형이 눈을 뜨고 일어나는 장면이 로보덱스에서 재연됐다. 로보덱스 홈페이지

2

일본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로봇전시회 로보덱스(Robodex)가 2003년 전례 없이 1년 앞당겨져 열렸다.

작품 속 아톰의 생일인 2003년 4월 7일에 생일축하잔치를 겸해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시회 한 가운데에는 아톰의 모형이 누워 있었다. 일본 열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생일에 맞춰 실제 아톰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아톰의 모형은 자신의 생일에 눈을 뜨고 일어나 갈채를 받았다.

전시회장에서는 그보다 3년 전 태어난 휴머노이드 아시모(ASIMO)가 돌아다니며 사랑을 받았다. 아시모는 세계 최초의 2족 보행 로봇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체형을 하고 있다. 아시모는 최근 수화를 배웠고 길 안내, 춤, 음료 서빙도 배웠다. 도쿄의 과학미래관에서 안내도우미로 일하며, 친선대사 자격으로 일본 총리와 함께 체코를 방문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개발 책임자가 혼다에 입사해 들은 주문은 직설적으로 “아톰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오사카시는 로봇공학의 메카 중 하나다. 오사카대의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는 2008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제미노이드(쌍둥이 로봇)를 선보였다. 그는 ‘제미노이드는 일부 인간이며 또한 내 형제’라고 말한다. 오사카시와 오사카대가 로봇산업에 정열적으로 자본을 투자하는 이유는 단순하고도 분명하다. 이곳이 데즈카 오사무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살아있다’고 말한 작가

일본의 로봇관과 로봇산업은 전설적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을 빼고 이야기할 방법이 없다. 일본인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로봇 기술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인은 로봇을 개발할 때 기능성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가”에 전력을 쏟는다. 로봇을 어린아이나 귀여운 동물 모양으로 만드는 이유는 ‘그래야 잘 팔리니까’가 아니라 ‘로봇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로봇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향이 얼마나 지배적인지 부작용마저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재해 당시 일본은 자국에 방사능 위험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로봇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춤을 추고 재롱을 피우는 로봇은 잔뜩 있었지만 방사성 물질을 치울 수 있는 기능성 로봇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결국 미국과 유럽의 군사용 로봇을 들여와야 했다.

1920년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를 기리기 위해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함께 체코를 방문한 로봇 아시모가 양국 총리와 건배하고 있다.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는 로봇의 선두주자로 전세계 로봇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휴머노이드 아시모가 2008년 5월 미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연주는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으로 이뤄졌으며 매진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철완 아톰’은 1952년부터 일본 만화잡지 ‘소년’에 연재된 만화로, 1963년부터 3년간 후지 TV에서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다.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었던 이 프로젝트는 데즈카가 만화 연재로 적자를 메워가며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이 30%를 넘는 대인기를 누리며 현재 일본이 애니메이션 왕국이 되는 기반이 된다.

원작이 늦게 소개된 탓에 한국에서는 아동용으로만 인식되는 면이 있지만, 실상 이 작품 안에는 로봇과 인간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실험이 등장한다.

아톰이 여타의 로봇 만화나 소설과 크게 다른 점이라면, 아톰이 도구로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톰은 텐마 박사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만든, ‘사랑받기 위한’ 로봇이다. 아톰 세계관의 로봇들은 ‘살아있으며’ ‘인권을 갖고 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아톰이 비행기표를 잃어버려 화물칸에 타려 하자, 승무원이 “아무리 로봇이라도 살아있는 것을 짐 취급할 수 없다”고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자 아톰은 에너지를 빼고 인형이 되어 수하물칸에 들어간다. 과연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로봇에 인권이 주어진다면

아톰 세계관의 로봇법 제 1조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원칙과 유사하게, ‘로봇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이다. 하지만 2조에서 몇 단계를 훌쩍 건너뛴다. 제 2조는 ‘그 조항이 지켜지는 한 모든 로봇은 자유고, 자유롭고 평등한 생활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이다. 그 외에도 ‘만들어 준 인간을 부모라고 불러야 한다’ ‘무단으로 다른 로봇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른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어린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등이 있다. 모두가 로봇을 인격체로 보는 법안이다.

‘만화’라는 장르 자체를 새로 정립하다시피 한 이 거장께서는 이 세계관을 결코 가벼이 풀어내지 않는다. 로봇법은 국가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아톰은 어느 나라에서는 노예나 물건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로봇법에 저항하는 로봇이 등장하자, 정부에서 이 로봇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로봇을 감별하여 수용소로 보내는 일도 있다. 자신의 부모까지 끌려가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는 것을 본 아톰은 처음으로 로봇 편에 서서 인간과 싸운다.

로봇법이 제정되는 과정 역시 간단하지 않다. 한 로봇이 긴 투쟁 끝에 시민권을 획득한 뒤, 자신이 자유민임을 선포하는 순간 분노한 시민들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다. 사고로 몸 전체를 로봇으로 바꾼 인간이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로봇 인권을 위해 투쟁하다가, 로봇법이 제정된 날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던 중 로봇 반대단체의 테러로 사망한다. 폭파실험을 위해 제작된 로봇이 죽음을 슬퍼하며 “만약 내가 두 살짜리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도 이렇게 쉽게 죽였을 것인가”하고 질문하는 장면은 현재 일본의 로봇관을 고스란히 예언한다.

1952년 만화로 연재되고 1960년대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우주소년 아톰'(원제 '철완 아토무')는 로봇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일본 로봇산업의 현재를 만들어 낸 작품이다. 사진은 2009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애니메이션 '아스트로 보이'. 케이디미디어 제공

아톰의 본질은 강함 아닌 선함

한국에서는 흔히 아톰의 인기에 대해, ‘작은 것이 강하다’는 증명으로 일본 전후세대의 주눅 든 마음에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하곤 한다. 이 해석이 맞다면 2009년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아스트로 보이’는 꽤 잘 만든 리메이크였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텐마 박사의 아들 토비는 로봇으로 새로 태어나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보인다.

아톰은 남녀노소 누구든 ‘자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톰은 ‘내’가 아니라 ’타인’을 대변한다. 아톰의 독보적인 면은 그 강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비정상적인 선함이다. 아톰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넘어서, 사마리아의 성자에 가깝다. 아톰은 차별 받지만 그 차별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선함이 있다. ‘철완 아톰’은 세상의 차별받는 모든 이들의 고난을, 또 그 차별을 넘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같이 이야기한다. 그랬기에 아톰은 전후세대의 일본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1952년 첫 연재를 시작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철완 아토무'

현대 일본 로봇산업의 토대

아톰을 연재할 당시, 데즈카는 학부모들로부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아이들을 오도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판 중에는 ‘일본이 고속열차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는 것은 허무맹랑함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 인간과 과학의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시대에, 어린 데즈카는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가 학대에 가까운 군사훈련을 받았고, 또한 서로 미워하고 죽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강제로 보아야 했다. 데즈카는 자신이 받은 교육을 거꾸로 활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 꿈과 희망을, 인권과 생명의 존중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애들 따위나 보는 것’을 그린다는 멸시를 받아가며 ‘애들이 보는 매체’에 한 거장이 온 힘을 다해 철학과 인권의식을 담아준 덕에, 한 나라의 로봇산업 전체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 어쩌면 한국도 지난 시대에 ‘허무맹랑한’ 것이라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검열과 삭제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현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일본의 한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로봇을 쇼핑몰에 풀어놓고 인간의 이동경로에 부딪치면서 지나게 했더니, 아이들이 로봇을 학대하고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대의 이유를 인터뷰한 결과, 로봇을 물건으로 인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고’ ‘고통을 느낄 것’ 같아서 괴롭혔다는 답변이 나왔다. 이에 제작자는 로봇이 아이들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알고리즘을 넣었다.

기계의 고장을 막는 문제를 넘어서서, 아이들의 인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로봇은 자기 보호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공존시대를 앞둔 지금, ‘사랑받는 로봇’을 만드는 과제는 더 이상 만화 속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김보영ㆍSF 작가

데즈카 오사무

1928년 11월 3일~1989년 2월 9일. 열일곱 살에 데뷔, 일생 700여편의 만화, 60여편의 애니메이션을 남겼다. 스토리 만화의 창시자이자 만화를 문화예술장르로 정착시킨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근대 만화의 형식, 영화적으로 컷을 나누고 연출하는 기본형태가 그에게서 비롯한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이자 만화의 신으로 불린다. 실상 일본의 모든 만화 장르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며, 일본이 만화대국이 된 기반이기도 하다. 말년에 입원 중에도 연재를 했고 타계하기 열흘 전까지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소개된 책>

우주소년 아톰 1,2세트

데즈카 오사무 지음

학산문화사 발행

불새 1세트

데즈카 오사무 지음

학산문화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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