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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입력
2017.06.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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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망가지면 일자리도 없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에서 국제노총을 포함한 노동조합이 '에너지전환'을 받아들이며 내건 구호이다. 석탄산업과 원전산업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에너지전환에 따른 일자리와 경제영향에 따른 대안을 열띠게 토론했다. 이처럼 ‘정의로운 전환’은 환경을 위해 설비를 폐쇄할 경우 노동자나 지역공동체가 정당한 보상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사회전체가 준비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친환경 대체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자력계의 반발이 격렬하다. 지난 31일, 원자력산업 관련 대학교수 230명이 ‘책임성 있는 에너지정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정부 정책이 “소수의 비전문가가 속전속결하는 제왕적 조치”로 “원자력계 모두의 사기와 공든 탑을 허물고 나아가 국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교수들의 움직임은 ‘정의로운 전환’ 이 아니라 ‘연구비’와 ‘이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행동에 가깝다.

성명에 참여한 교수들이 2012년 2월 고리1호기 전원상실로 노심용융사고가 발생할 뻔 했을 때, 2013년 초유의 원전 부품비리 사건으로 원전 3기 가동이 중단되었을 때, 2016년 원자력연구원이 방사능폐기물 불법 매립하고 연구결과를 조작했을 때, 지금처럼 성명서를 내고 목소리를 냈다면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는 이미 원전 25기를 돌리고 있다. 따라서 경주의 규모 5.8 지진을 계기로 원전 11기 추가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전비중을 줄여나가겠다는 정부 계획은 합리적이다. 당장 원전 25기를 멈추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31.2%가 원전에서 생산되는데, 단순히 매년 1%씩만 줄여도 30년 뒤면 탈원전이 가능하다. 일본은 50여기에 달하는 원전을 모두 멈추고도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았다. 원전이 빠진 자리를 에너지 수요관리, 효율개선, 가스복합발전,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면 된다.

정부정책 변화에 맞춰 지자체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전국으로 확대하면 원전 14기, 화력발전소 31기를 대체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촉구하며, 클린에너지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안희정 충남 도지사도 지역별전력요금 차등제도, 탈석탄 대안계획 수립,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지역에너지전환기금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 참여자들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교수들은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과 ‘민주적 절차’를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과정에 원자력 관련 교수들도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배제되어왔던 시민, 노동자, 지자체, 지역주민들도 참여해서, 진행과정과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진행하자. 전국을 순회하며 지자체별로 토론회도 열고, 독일처럼 생방송 TV토론도 해보자.

성명서를 발표에 참여한 교수들 중에는 원전이나 송전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경주 나아리 주민들의 몸에서 방사능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고 있다. 밀양과 청도는 송전탑 건설로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마을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원전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암 소송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책임성 있는’ 에너지정책을 촉구하며, 원전대신 안전에 투표한 것이다.

6월 18일, 고리1호기가 폐쇄된다. 에너지전환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다. 이 변화가 모두에게 평등하고,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고, 준비하자.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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