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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등록 : 2015.12.20 09:37
수정 : 2015.12.20 10:19

[이종필의 제5원소] 안철수와 제로존 이론

등록 : 2015.12.20 09:37
수정 : 2015.12.20 10:19

몇 년 전에 제로존 이론이 세간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길이, 질량, 시간 등 7개의 기본 단위를 숫자로 변환해 통일시키고 이를 통해 물리학 법칙을 검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때 시간의 단위 초를 1로 두고 여러 자연 상수와의 정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모든 단위를 통합할 수 있는 숫자단위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 세 종류의 중성미자의 질량과 그 관계식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들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단위계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상대성이론을 기술할 때는 흔히 광속을 1로 둔다. 이 척도는 광속에 필적할 만큼 빠른 속력을 기술할 때 편리하다. 속력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므로 광속을 1로 두면 시간과 길이의 단위가 같아진다. 이는 예컨대 길이를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국제도량형국에서 정한 1m는 빛이 약 3억 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이다. 광속이 초속으로 약 3억m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플랑크 상수나 중력상수, 볼츠만 상수까지 1로 두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로존 이론이 나왔을 때 학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단위 변환은 늘 해오던 일이라 새로울 게 없다. 지금까지 이룩한 물리 체계가 내적 일관성을 갖고 있으므로 어디에서 출발하든 다른 쪽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연의 근본상수는 실험을 통해 직접 측정을 해야 그 값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정말로 자연의 근본상수라면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존의 알려진 값으로 유도되는 값은 근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리학회와 표준과학연구원이 제로존 이론에 대해 과학적 가치가 없는 숫자 끼워 맞추기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적 내용이 나오려면 자연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있어야 한다. 세상 살다 보니 꼭 과학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닌 듯싶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안철수 의원.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몇 년 전 안철수 열풍이 한창이었을 때 나는 꽤 큰 기대를 했었다. 보수와 진보 속의 허구적인 대립 구도를 깨고 생산적인 경쟁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3년쯤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제로존 이론처럼 내용 없는 이론이거나 숫자 끼워 맞추기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하는 실망감이 더 크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판에 등장할 때부터 새로운 정치와 혁신을 주장했지만 대체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지, 혁신은 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정치 신인치고 새로운 정치나 혁신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기존의 정치판에서 떠도는 말을 잘 조합해서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만든다고 한들, 그게 ‘헬조선’이라는 진흙구덩이 현실을 살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리가 만무하다.

비단 안철수 의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남겨진 문재인 대표도 새로움의 실체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와 당의 운명 또한 엉터리 과학 이론의 말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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