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031억… 4년만에 2배로
불경기 길어지며 체불 고질병 심화
건설기계 다루는 특수고용직은
체불금액 1조4000억 달할 듯
“추석이 코앞인데 고향(전북 전주)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7일 만난 덤프트럭 운전기사 김모(58)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경기 하남시 한 택지개발사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올해 4월부터 5개월째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체불된 돈만 1,100만원이다. 1억원이 넘는 트럭의 할부금과 유류비는 대출 받은 수백만원으로 메우고 있다.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 밀린 임금 정산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줄 돈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씨는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돈을 언제 돈을 수 있다는 기약조차 없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그 막막함이 때론 돌이킬 수 없는 분노로 표출된다. 중국인 황모(47)씨는 16일 인천 청천동의 한 주택에서 중국인 여성 왕모(39)를 목 졸라 살해했다.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받지 못한 임금 300만원이 화근이었다. 황씨는 경찰조사에서 “공사현장 작업반장인 최모(45)씨를 찾아갔으나 임금을 주기는커녕 부인인 왕씨가 불법 체류자임을 신고해 일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지난 5월에 유효기간 30일인 관광비자로 국내 들어와 공사장을 전전했고, 범행 후에는 바다에 투신했다가 구조됐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추석을 앞둔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정부가 명절 때마다 단속에 나서고, 다양한 구제책을 시행 중이지만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체불 관행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에서 420만원의 임금체불 해결을 촉구하며 원청기업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덤프트럭 운전사의 모습은 이 시대 열악한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의 체불임금은 2010년 1,464억원에서 지난해 3,031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전체 업종에서 건설업 체불임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2.6%에서 23%로 높아졌다.
건설기계 노동자까지 합하면 임금체불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덤프트럭과 굴삭기 등 건설기계를 소유한 조합원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만 2,000억원의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전국에 등록된 덤프트럭과 굴삭기가 13만9,000대인 것을 감안하면 총 체불금액이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건설노조는 추정하고 있다. 건설기계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이어서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부의 체불임금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영철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일감이 고정적이지 않은 건설노동자에게 임금체불은 살인과 같은 형벌”이라며 “돈 떼먹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업주와 명절 때만 체불대책 운운하는 정부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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