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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열전] 2군 백업멤버 둘째 이름까지 다~ 꿰는 형님

입력
2018.03.22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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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

쌍방울 시작 15년 현역 타향살이

日 요미우리 거쳐 LG서 첫 감독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올리기도

2015년 선동열 빈자리에 러브콜

교감 리더십으로 선수들에 신망

8년만의 통합우승 ‘광주의 영웅’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지휘하는 김기태 KIA 감독. KIA 제공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지휘하는 김기태 KIA 감독. KIA 제공

1990년 11월. 1991시즌 프로야구 1차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당시 ‘최대어’는 인하대 4학년 김기태.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을 것이 당연해 보였던 광주 출신 유망주였지만 해태는 광주진흥고-한양대 출신의 투수 오희주를 지명했다. 해태의 선택을 못 받은 김기태는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에 2차 1순위로 지명됐고, 데뷔 첫해 홈런 27개를 때려내며 당시 좌타자 최고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1994년 홈런과 장타율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92년부터 94년까지 3년 간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그는 광주가 아닌 전주의 영웅이 됐다.

돌고 돌아온 광주의 영웅

김기태(49) KIA 타이거즈 감독은 광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야구를 시작한 서림초등학교 5학년 때 5ㆍ18 민주화운동을 겪었고, 타격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광주 야구 명문교인 충장중과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김 감독은 4년 뒤 해태 입단을 꿈꾸며 1988년 인하대에 진학해 처음으로 광주를 떠났다.

김 감독의 야구 인생은 화려했다. 쌍방울(1991∼1998년), 삼성 라이온즈(1999∼2001년), SK 와이번스(2002∼2005년)에서 프로 통산 타율 2할9푼4리, 249홈런, 923타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타이거즈와 인연은 지도자일 때도 잘 닿지 않았다. 그는 2005년 SK에서 15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한 뒤 지도자로 변신했다. SK 보조 타격 코치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육성 코치, 타격코치 보좌, 2군 타격 코치 등을 거쳤다.

국내로 돌아와 2009년 9월 LG 트윈스 2군 감독, 2011년 LG 수석코치를 거쳐 2011년 10월 LG 감독으로 부임했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검증되지 않은 타지 출신’ 김 감독에 대한 LG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선수들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야구장의 용역 업체 직원들까지 챙기는 김 감독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모래알’로 소문났던 LG 선수단을 그렇게 하나로 뭉쳐 2013년 무려 11년 만에 ‘가을 야구’ 무대에 올려놓았다.

김 감독과 타이거즈의 운명적인 만남은 예상치 못한 기회에 찾아왔다. 김 감독은 2014시즌 초반 성적 부진의 자괴감으로 돌연 LG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 해 가을 KIA 구단은 부진한 성적에도 선동열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성난 광주 팬심이 들끓자 선 감독은 스스로 지휘봉을 반납했다. 고심 끝에 KIA가 떠올린 후임 카드가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KIA 감독 첫 해였던 2015년에는 성적보다 타이거즈의 '승리 DNA'를 심는 데 주력했다. 성적은 7위, 가을야구는 실패했지만, 선수들 마음에는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2016년 KIA는 5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타 5년 만에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이 경험이 지난해 8년 만의 통합 우승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9년 전 광주를 떠났던 김 감독은 그렇게 광주의 야구 영웅으로 돌아왔다.

LG 사령탑 시절의 김기태 감독. LG 제공
LG 사령탑 시절의 김기태 감독. LG 제공

‘형님’ ‘동행’… 김기태의 낮은 리더십

KBO리그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두 팀에 수많은 명장들이 거쳐갔지만 아무도 못 풀었던 숙원을 두 번이나 푼 김 감독의 리더십은 ‘형님’이란 두 글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형님 리더십'에서 한발 더 나아가 2군 무명 선수의 둘째 아이 이름까지 기억하는 '교감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수들의 사소한 감성부터 자극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 김 감독은 LG에서도, KIA에서도 ‘제왕’으로 군림하던 이전 감독에 의해 경직된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KIA의 주축 선수들은 모두 자유계약선수(FA) 등을 통해 수혈된 외부 집단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건 김기태 야구의 동행 정신이다. KIA 선수들은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우승해야 한다"며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 좋은 성적은 좋은 팀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아주 쉬운 명제를 입증한 김 감독의 낮은 리더십은 야구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시즌 삼성에서 KIA로 이적한 최형우는 "선수들에게 웃어주고 형님처럼 하는 감독은 많다. 그러나 우리 감독님은 우리와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한다. 다른 뻔한 이야기는 다 필요 없다. 선수와 대화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최고"라고 김 감독의 인간적인 매력을 설명했다.

김 감독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기자들의 질문에 “나도 담당 코치에게 물어봐야 안다”고 머쓱하게 웃곤 한다. 김 감독과 LG에서 투수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전권을 주신 감독님은 김기태 감독님이 유일했고 그 때 많이 공부가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베테랑을 대우해주고 그들이 팀을 이끌도록 만든다. 대신 김 감독은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더그아웃에서 끊임없이 소통을 하며 선수들의 마음을 읽는다. 컨디션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손으로 술잔을 꺾는 흉내를 내며 “어제 많이 했나”라고 농담할 정도다. 선수의 여자친구 문제, 일상의 고충까지 훤히 꿰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3년 재계약했다. ‘디펜딩챔피언’ KIA는 올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꼽힌다. 전력 유출이 없었고, ‘베테랑’ 정성훈이 합류했다. 불펜과 부상 선수 등 불안 요소도 있지만 김 감독은 “개막까지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말 아니겠는가. 진작 무엇인가를 더 할 걸 하며 후회하고 싶진 않다. 당장 내일 모레가 개막이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수성에 대한 부담조차도 영광”이라는 말로 넘치는 자신감과 현재 팀의 위상을 대변했다. 김 감독은 “그 자체로 우리 팀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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