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4.18 14:01
수정 : 2017.04.18 14:01

[이정모 칼럼] 과학을 위한 행진

등록 : 2017.04.18 14:01
수정 : 2017.04.18 14:01

오늘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가슴이 뛰던 날이었다. 해마다 4월 19일이 되면 선생님들은 1960년의 역사를 설명하시곤 했는데, 선생님의 표정에서 그날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1960년 4월 19일에는 정부 주도로 그 어떤 기념식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말하는 기념식은 당연히 4ㆍ19혁명 기념식은 아니다. 대신 정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총을 쏘았다. 민주주의를 요구한 그 학생들도 그날 기념식을 열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은 ‘과학의 날’이었다. 당시에는 ‘과학데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의 날이 처음 제정된 때는 1934년. 조국을 잃고 일제 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조선의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기 원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과학대중화 운동’이라고 당시 지식인들은 생각했다. 여기에 앞장 선 사람은 경성공업고등학교 요업과 1회 졸업생 김용관(1897~1967). 1923년부터 발명학회를 조직하고 발명학회 잡지를 발행하던 김용관은 1934년 4월 19일 제1회 과학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왜 하필 4월 19일이었을까? 1934년 4월 19일은 찰스 다윈이 죽은 지 꼭 50년 되는 날이었다. 김용관과 그의 동지들은 진화론이 인류에게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의 작은 천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우주의 온 천체들이 모두 같은 보편적인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을 규명했다면, 찰스 다윈은 모든 생명의 기원은 하나이며 우리 인류도 많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임을 밝혔다. 과학 혁명의 흐름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다. 모든 천체와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따라서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5월 19일이 발명의 날인 까닭은 1441년(세종 23년) 장영실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측우기를 이듬해인 1442년 세종대왕이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 9월 18일과 10월 30일은 각각 철도의 날과 항공의 날이다. 쉬이 짐작할 수 있듯,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노량진-제물포, 1899년)과 최초의 민항기 노선(서울-부산, 1948년)이 개통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기념일에는 무릇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현재의 과학의 날은 4월 21일이다. 그렇다면 다윈 기일인 4월 19일 대신 정해진 4월 21에는 어떤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을까? 그 계기가 조금 허망하다.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가 중앙 행정기관으로 독립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68년부터는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 사이에 과학기술처는 사라졌고 과학기술처를 대신하여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으로 부처 이름이 바뀌었다. 몇 달 뒤면 이름이 또 바뀔지도 모르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출범일인 3월 23일로 과학의 날을 옮기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는 지금 과학의 날을 다시 4월 19일로 되돌리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4ㆍ19혁명일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싶지 않다. 기념일이야 아무 때나 하면 어떻겠는가? 지금은 딱히 과학의 날이 아니더라도 과학을 기념하는 날은 많다. 4월은 통째로 과학의 달이기도 하다. 과학의 달이 단지 학교에서 과학자를 초대한 무수한 과학 강연이 열리는 달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과학의 날이 아이들이 물로켓을 쏘아 올리는 날이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선배들이 일어섰던 4월 19일에 우리는 지금 위기에 빠진 과학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다. 정말이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그리고 유명한 의학저널인 <BMJ>에 ‘과학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글이 실리고 있다. 그 계기 제공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취임한 이후 미국의 과학 정책과 연구 환경은 전 세계 과학자들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단순히 연구 환경과 처우가 나빠질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다. 과학기술인들은 과학연구에 정부가 개입해 통제하고, 과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할 때 ‘검열’을 하는 상황이 올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걱정과 근심만 하고 있으면 과학자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일어서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반정부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라. 전 세계 과학자들이 오는 4월 22일(토)에 행진한다. 이름하여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 전 세계 54국 514개 도시에서 과학기술인들과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행진한다. 서울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다양한 과학행사가 열리는데 시민과 과학자가 소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가을부터 봄까지 광화문 일대를 행진한 끝에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있다. 이번 토요일엔 과학을 위해 행진하면 어떨까. 미래를 위해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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