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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쇼 골머리… 예약금 받겠다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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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쇼 골머리… 예약금 받겠다는 식당

입력
2017.10.23 20: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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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명 회식 예약했던 건설사

재건축 수주 실패 뒤 안 나타나

뿔난 식당, 예약거부 등 강수 확산

“한번 어긴 사람이 대체로 반복”

블랙리스트 고객과 거래 끊기도

식당 예약장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식당 예약장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북구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58)씨는 올해부터 단체 손님에게 최소 10만원의 예약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간 한 달에 한 번 꼴로 반복돼 온 주말 단체 손님의 ‘노쇼(No-Show·예약부도)’로 인한 피해액이 해마다 1,000만원은 족히 넘는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23일 “주말이면 산악회 단체 예약이 끊임 없지만, 종종 예약시간이 돼도 말 없이 나타나지 않는 일이 벌어져 금전적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면서 “‘책임비용’ 차원에서 예약금을 받는다”고 했다.

식당 주인들이 단체 예약 손님에게 “예약금 없인 예약 없다”고 선언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손님이 ‘갑(甲)’ 식당 주인이 ‘을(乙)’이던 구조를 스스로 깨면서, 손님들에게 예약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다. 단체 예약 손님이 예고 없이 나타나지 않을 때마다 준비해 둔 음식이나 재료에 대한 손해는 물론, 같은 시간 가게를 찾아 온 단골 개인 손님들마저 돌려보내야 했던 일들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일부 상인은 예약을 어긴 손님을 다시 받지 않거나, 아예 예약 자체를 받지 않는 등 강수를 둔다. 서울 강서구에서 미용업소(네일숍)을 운영 중인 이모(24)씨는 “대체로 한 번 노쇼를 했던 고객이 반복해 예약을 어기더라”라며 “최근 손님에게 다른 가게를 이용하되, 노쇼는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고 했다. 강남구 한 식당 주인 역시 “몇 년 전부터 예약을 아예 안 받기로 했다”고 했다. 노쇼로 인한 금전적 피해도 크지만, 그 불이익이 다른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란 게 이들 주장이다.

상인들 속앓이에 그쳤던 노쇼 부작용은 최근 갑질 논란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이는 지난 15일 롯데건설이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주택재건축정비사업에 실패한 뒤, 400여명을 예약한 회식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촉발됐다. 식당 종업원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은 금세 삭제됐고 롯데건설 측이 “예약 인원은 300명이며, 피해액 100만원을 보상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예약금 요구 등 상인들 반기(反旗)에 시민들 의견은 갈린다. 역지사지 자세로 예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부하직원이 한 예약이 상사 변심으로 취소돼 사비로 예약금을 메워야 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식당과 병원, 미용실, 고속버스 부문 100개 업체를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쇼가 초래하는 사회적 손실은 직접비용만 4조5,000억원, 간접비용까지 포함하면 8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비용으로 환산 가능한 손실도 크지만, 병원 ‘진료 노쇼’ 등처럼 무형의 피해도 심각한 실정”이라며 “법 제도 마련과 함께 예약 문화에 대한 시민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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