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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우버, 동남아 필수앱 -> 민폐앱

입력
2018.04.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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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선언으로 지급 불투명

우버기사들 콜은 받고 카드는 안 받아

동남아를 여행한 한국인들이 한번 쓰고 나면 다음에 또 쓰는 어플리케이션(앱)이 있습니다. 우버(Uber)와 그랩(Grab)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의 ‘카카오 택시’와 비슷한, 차량호출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인데, 두어 번 쓰고 나면 이런 생각이 절로 납니다. ‘동남아에도 있는 서비스가 한국에는 왜 없지?’

한 우버 승객이 우버모토(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호찌민 시내를 지나고 있다. 지난달 말 우버의 동남아 시장 철수 선언으로 앞으로 동남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한 우버 승객이 우버모토(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호찌민 시내를 지나고 있다. 지난달 말 우버의 동남아 시장 철수 선언으로 앞으로 동남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은 많습니다. 우선 말이 필요 없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하면 영어하는 택시 기사를 만나 보기 어렵습니다. 목적지 주소를 미리 입력해서 차량을 부르는 기능이, 말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수요가 많은 일부 시간대를 제외하면 택시보다 저렴하고, 사전에 등록한 카드로 자동결제 되기 때문에 신용카드 복제 사기나 현지 화폐에 익숙하지 않아 당하는 사기(관련기사: 밑장 빼기) 같은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친절합니다. 양사 모두 각 운행 때마다 승객이 별점(5개 만점)으로 기사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들은 높은 별점 기록을 유지해야 수수료 할인 등의 인센티브를 받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장점이 많다 보니 특정 시간대에는 잡기가 힘들고, 어떤 때는 ‘지금 태우고 있는 손님을 근처 내려주고 가겠다’며 좀 더 기다리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택시보다 비쌀 때가 있습니다. 또 기사들이 주변에 있는 게 앱 화면으로 보이는데도 가까운 거리 호출에는 응하지 않는다든지, 오겠다고 해서 10분을 기다렸는데 막상 취소를 통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중교통 없는 동남아, 우버ㆍ그랩 인기는 하늘

이런 문제점을 감안하더라도 대중교통이 없다시피 한 동남아에서 우버나 그랩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버 그랩 때문에 차 살 생각을 접었다는 사람들도 있고, 여행객 중에서는 이것 없이는 여행 못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남아 여행 필수앱으로 자리 잡은 배경입니다. 기사들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누구라도 언제든 기사로 뛸 수 있어 대학생들이 취업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우버 기사로 뛰고 있는 제프린 아낙(33)씨는 “한국 화장품을 가져와 팔기 위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승객으로 태운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운전이 단순한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또 자신이 간호사라고 밝힌 한 여성 운전자는 “일이 없는 날 집에 있는 것보다 차를 끌고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버는 게 좋다”며 “이 일을 하면서 여태껏 가보지 못한 쿠알라룸프르 시내 구석 구석을 구경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이런 우버와 그랩의 인기 때문에 베트남의 경우 일반 택시 업체들이 폐업 위기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기사 수 십 명이 우버나 그랩 기사로 옮겨가는 바람에 차는 남아돌고, 회사는 기사 월급을 주기 위해 차를 내다 팔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관련기사: 사라지는 택시들) 기사들은 자신이 4, 5년을 일한 돈을 꼬박 모아야 장만할 수 있는 현대 i10, 기아 모닝 같은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한 뒤 개인택시와 같은 사장님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버가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가운데, 우버 기사로 뛰던 한 기사가 우버 재킷을 벗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우버가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가운데, 우버 기사로 뛰던 한 기사가 우버 재킷을 벗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외국인에게 더 인기 있는 우버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그랩인 만큼 안방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처럼 동남아 밖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우버가 더 인기 있습니다. 미국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한번이라도 우버를 경험한 사람들은 또 우버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버는 70여개국에서, 그랩은 동남아 8개국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우버가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게 넘기고 철수한다고 발표하면서 동남아 차량호출서비스 시장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관련기사 : 수백만 기사들, 이직이냐 전직이냐) ‘우버 헬멧+그랩 재킷’의, 어느 소속 기사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이 대표적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수수료가 저렴한 우버에서 비싼 그랩으로 옮겨가길 주저하는 운전기사들, 지금까지 관리해서 쌓은 별점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옮겨가는 이들 등 다양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할부로 구입한 차를 팔고 마일린 같은 일반 택시회사로 들어가는 기사들도 현지 언론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용객, 소비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버가 철수 선언을 했지만, 여전히 동남아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쓰던 앱, 익숙한 앱을 먼저 켜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성에 따라 동남아에서 우버를 켰다가는 낭패 보기 쉬운 요즘입니다.

우버가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그 앱은 작동하고 있다. 호출을 받은 우버 기사들이 앱을 통하지 않고 직접 결제를 요구하면서 이용객들 사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이달 초 베트남 호찌민 그랩센터의 한 직원(오른쪽)이 신규 등록을 위한 찾은 우버기사를 안내하고 있는 모습.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우버가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그 앱은 작동하고 있다. 호출을 받은 우버 기사들이 앱을 통하지 않고 직접 결제를 요구하면서 이용객들 사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이달 초 베트남 호찌민 그랩센터의 한 직원(오른쪽)이 신규 등록을 위한 찾은 우버기사를 안내하고 있는 모습.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필수앱이 이젠 민폐앱

우버 앱을 통해 부른 차량에 탑승하면, 기사는 반드시 자신의 앱을 통해 손님을 태웠다는 사실을 확인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버 기사들은 이걸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승객 휴대폰의 앱 화면에는 계속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어리둥절한 사이 차량이 출발하면 승객은 ‘픽업포인트’에서 계속 멀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부른 차가 왔고 => 그래서 탑승했고 =>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는 있지만, 앱 상으로는 내가 부른 차량이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 멀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냐고 기사한테 따져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 옵니다. “우버에 당신이 돈을 내고 내가 나중에 우버한테서 받으면 되는데, 이들이 철수를 한다고 한다. 내가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냥 우버 앱 끄고 가자. 미안하지만, 내릴 때 현금으로 결제해주시고.”

이 경우 저장된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 결제해야 하고, 호출한 지 5분 이상이 지나서 취소할 경우 발생하는 취소 수수료도 물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우버를 타면 그야말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무허가 택시를 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고객센터에 이의를 제기하고 따지면 됩니다만, 이곳에서 마음이 떠난 요즘 우버 고객센터는 예전만큼 빠르고,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종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심심찮게 중복결제 이야기도 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버 기사들이 앱을 통해 손님을 잡았지만, 앱을 따돌리고 승객과 직접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버와 작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더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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