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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자신의 꿈은 이루지 못한 神, 드로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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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자신의 꿈은 이루지 못한 神, 드로그바

입력
2014.06.2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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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직전 실점 첫 16강 꿈 물거품 마지막 월드컵 무대 드록神 아쉬운 퇴장

'드록신' 디디에 드로그바가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쉬운 좌절을 맛봤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그리스의 결승골을 벤치에서 지켜본 뒤 고개를 숙였다. 코트디부아르는 1-2로 패하며 다 잡은 16강행 티켓을 그리스에 건네줬다. AP 연합뉴스
'드록신' 디디에 드로그바가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쉬운 좌절을 맛봤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그리스의 결승골을 벤치에서 지켜본 뒤 고개를 숙였다. 코트디부아르는 1-2로 패하며 다 잡은 16강행 티켓을 그리스에 건네줬다. AP 연합뉴스

코트디부아르가 다시 분루를 삼켰다. 조별 최종전 종료 직전 실점으로 첫 16강 진출 꿈도 물거품이 됐다. ‘드록신(神)’ 디디에 드로그바(36ㆍ갈라타사라이)도 팀을 구하진 못했다.

25일(한국시간) 열린 그리스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C조 3차전 경기 종료 직전까지 코트디부아르는 16강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한 점을 먼저 줬지만 한 점을 따라잡으면서다. 비기기만 해도 콜롬비아에 이어 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리스가 후반 추가 시간에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연출해냈다.

이날 ‘키 플레이어’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드로그바였다. 적잖은 나이(한국 나이 37세)와 부상 탓에 조별리그 1, 2차전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됐지만 이번 경기에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2004년부터 7년 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스트라이커로 뛸 당시 그의 경기력은 최절정이었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드록신이란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의 존재감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빛났다. 지난 15일 치른 일본과의 C조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드로그바가 교체로 들어간 뒤에만 두 골을 뽑아내며 짜릿한 2대 1 역전승을 일궈냈다. 골을 터뜨린 선수는 윌프레드 보니(스완지 시티)와 제르비뉴(AS로마)였지만 축구 팬들의 관심은 ‘드로그바 효과’에 더 쏠렸다. 드로그바가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으며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후반 29분 코트디부아르의 동점골에 환호한 디디에 드로그바. 하지만 드로그바의 이 환한 웃음은 경기 직전 터진 그리스 사마라스의 결승골에 좌절의 눈물로 바뀌었다. AP 연합뉴스
후반 29분 코트디부아르의 동점골에 환호한 디디에 드로그바. 하지만 드로그바의 이 환한 웃음은 경기 직전 터진 그리스 사마라스의 결승골에 좌절의 눈물로 바뀌었다. AP 연합뉴스

이날도 그는 후반 29분 보니가 동점골을 터뜨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4분 뒤 교체돼 나왔다. 때문에 팀이 경기 막판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역전패하는 장면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매번 강팀들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된 탓에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던 드로그바는, 조국에게는 세 번째이자 자기에게 마지막이 될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끝내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아쉽게 퇴장하게 됐다.

드로그바가 신으로 불리는 건 축구 실력이 출중해서만은 아니다. 정작 그의 진가는 경기장 밖에서 드러나는 부분이 더 크다. 20세기 코트디부아르의 역사엔 큰 얼룩이 있다.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뒤 70여년 간 유럽 제국주의 통치 아래 신음했다. 많은 국민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노예로 팔려갔다. 1960년 독립한 뒤에도 혼란은 지속됐다. 부정선거와 군부 쿠데타 등에 따른 내전이 이어져,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7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했다.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첫 월드컵 본선행(行)을 이끈 건 2005년. 무려 9수(修) 만에 거둔 쾌거였다. 그러나 남부 정부군과 북부 반군 간 내전 탓에 조국 땅에선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그는 자국에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호소했다. “일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달라.” 그 결과 양측은 잠시 서로를 향한 총부리를 거두기로 합의했고, 2년 뒤 평화 협정과 함께 내전이 종식됐다.

신의 행보는 이뿐 아니다. 2009년 펩시 광고 출연료로 받은 55억원을 고향인 아비잔의 종합병원을 짓는 데 쏟아 부었고 어린이 예방 접종 지원을 위해 매달 3억원을 기부하고 있다.

드로그바는 자국민들에게 기적을 선물해 왔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심었고, 내전으로 찢긴 나라를 하나로 봉합했다. 이번 월드컵 기간을 전후해선 대표팀과 조국에 악재가 겹쳤다. ‘형제 국가대표’ 수비수 콜로 투레(33ㆍ리버풀)와 미드필더 야야 투레(31ㆍ맨체스터시티)의 동생 이브라힘이 숨졌다는 비보가 지난 20일 콜롬비아에 1대 2로 패한 직후 날아들었고, 코트디부아르는 현재 대형 홍수라는 국가적 재난에 처한 상태다. 이번 대회에서 그가 세 번째 도전에 반드시 성공, 자국 대표팀을 16강으로 견인하겠다고 다짐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목전에서 목표 달성을 4년 뒤로 미뤄야 하는 코트디부아르의 모습을 망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드로그바에게, 인간이란 한계가 뼈저렸다. 자국민에게 수 많은 기적을 선물했지만 월드컵에서는 끝내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16강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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