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긍정, 희망, 미래 프레임

입력
2017.04.07 10:53
0 0

흔히 사람들은 팩트는 무조건 옳고 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팩트는 사실일 뿐 진실은 아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더라도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프레임’이란 책에 소개된 다음 사례는 자주 인용된다. 어떤 사람이 기도 중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랍비에게 물었다. 랍비는 정색하며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이므로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다. 다른 친구가 랍비에게 다시 물었다.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하면 안 되나요?” 랍비는 이번에는 미소를 지으며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도하다가 흡연하는 것과 흡연하다가 기도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지만 질문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바로 프레임 때문이다. 프레임은 원래 ‘틀’이란 뜻인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프레임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네모난 창으로 보면 세상은 네모고, 둥근 창으로 들여다보면 세상은 둥글다. 붉은색 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붉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면 대낮에도 세상은 캄캄하다.

심리학, 정치, 언론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프레임은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도덕, 돈 등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갖고 있다. 프레임에 따라 같은 현상도 다르게 인식된다. 가령 과학기술 발전에 대해 똑같이 동의해도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문화의 한 부분 또는 삶의 질 제고로 보느냐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은 달라질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 프레임으로,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 프레임으로 세상을 대한다. 반 컵의 물을 보고 긍정적인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며 희망을 갖고, 부정적인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다며 실망한다.

한국 사람들은 부정 프레임에 더 익숙하다. 주변에서는 남을 칭찬하는 소리보다는 뒷담화하거나 비난하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못 먹는 감은 그냥 놔두면 되는데 괜히 찔러봐야 직성이 풀리고, 사촌이 땅 사면 축하는 못해 줄지언정 배가 아파온다. 함께 배고픈 건 참아도 남이 잘돼 배 아픈 건 못 참는 것이 한국인의 고질적 습성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로맨스냐 불륜이냐도 프레임의 차이다. 부정 프레임으로 보는 네거티브는 특히 선거 국면에 만연한다. 유권자들은 누가 나은가가 아니라 누가 싫은가의 프레임으로 정치판을 관전하고,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과 비전보다 상대 약점을 부각하고 때론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네거티브 프레임이 잘 먹힌다는 사실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미래 비전이다. 선거는 성인군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며, 싫은 사람, 잘못이 있는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선택이 돼야 한다. 현실을 보면 정치 프레임, 안보 프레임, 경제 프레임은 난무하지만 정말 미래에 중요해질 과학기술, 인재, 문화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프레임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생각과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사촌이 땅 사면 축하해 주고, 내가 못 먹는 감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줄 생각을 해야 한다. 네거티브, 적폐, 과거사 대신 긍정, 희망, 미래 프레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긍정 프레임으로 봐야 희망이 보인다.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미래 프레임으로 현재를 보고 희망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가 다투면 미래를 잃게 된다는 처칠의 명언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