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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신건강 경시 사회

입력
2017.01.1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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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서울시 동작구, 용산구, 강북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정신보건전문요원 3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추운 날씨에 동작구청 앞 해고철회 촛불집회에 참여한 전문요원들은 유난히 젊어 보였다. 2012년 서울시 자료를 찾아보니 서울시정신보건센터 전문요원의 절반이 20대이고, 주로 1년 계약직이며 근속연수가 2.75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위탁, 재위탁, 업체변경, 직영전환을 수시로 하면서 고용이 불안한 상태인 것이다. 정부는 높은 자살률을 낮추겠다고 정책들을 발표하지만, 정작 자살을 예방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노동조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한국사회는 경쟁과 과로, 빈곤 등으로 인해 자살률이 12년째 OECD 회원국 1위이다.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5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수는 7만1,916명이다. 이라크전쟁 사망자 3만8,625명의 약 2배나 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1만4,719명의 약 5배에 달한다. 우리는 매일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정신이 아프면 육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파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보건법제 13조에서도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정신질환 예방, 상담, 사회복귀 훈련을 포함해 아동·청소년 자살을 예방 역할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지역민들이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느낄 때 돈 걱정 없이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문턱 낮은 공간이다. 마음의 병이 있는 이들을 상담하는 일은 충분한 시간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상담 중에 폭력이나 폭언에 노출되는 일도 잦다. 그런데도 지난 20여 년 동안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처우 개선 없이 비정규직 전문요원들의 헌신으로 유지되어 왔다.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을 ‘하루살이’와 같은 상황으로 방치해온 것은 우리사회가 정신건강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메르스 사태 당시 드러난 공중보건시스템의 부재는 결코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한 서울시 산하 정신건강증진센터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50일간의 파업 끝에 서울시와 구청장협의회, 센터장, 노조 등을 포함한 4개 단위가 고용안정과 중단 없는 센터 운영에 합의했다. 이에 따란 서울시 대부분 자치구는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민간위탁 또는 직영전환을 했지만 동작구, 용산구, 강북구는 운영방침을 정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이들 구청은 노동권에 대한 존중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민들에 대한 정신건강 상담과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구청장과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직무유기가 지역주민의 정신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다.

가난하고 아픈 시민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공중보건체계를 구축해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에 생명 안전망을 갖추는 것과 같다. 공적인 정신건강증진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을 이리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지자체가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민들의 정신건강을 치유할 수 있는 전문요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면서 어떻게 구민들이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몸의 건강을 살피고 돌보듯이 정신건강을 살피고 돌보는 이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기본은 정신건강을 돌보는 노동자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정신건강 상담과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절실하고,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 동작구, 용산구, 강북구는 정신건강증진센터 정신보건전문요원들에 대한 고용을 보장해 구민들에 대한 정신건강증진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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