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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행복세상] 대통령 선거도 배우자 고르듯

입력
2017.04.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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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준 낮추면 행복지수 절로 높아져

후보들 달콤한 약속보다 솔직한 처방을

말뿐인 지도자 뽑는 우를 다시 범해서야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다. 이맘때면 필자도 주례 부탁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례를 할 때 가장 곤란한 점은 신랑신부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모든 하객들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는 긴장하고 경황이 없어 주례사를 새겨듣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배경, 다양한 연령층의 하객이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고, 신랑신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식적이면서 신랑신부에게 꼭 해주고 싶은 ‘공통분모’를 찾다 보니 고민 끝에 생각해낸 말이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기대수준을 낮추라’이다. 주례가 성혼 선언문을 낭독한 순간, 신랑신부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 수준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내용이다.

통계청장 시절 필자는 행복지수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다. 통계청의 공식적인 통계는 물론 아니다. 행복지수는 각자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만든 지수다. 나의 행복지수는 남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분모로 하고 ‘내가 성취한 것’을 분자로 했을 때 느끼는 만족도(내가 성취한 것/내가 바라는 것)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본인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룬다면 행복지수는 100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바라는 것을 다 성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0개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 7개를 성취하고 3개를 이루지 못했다면 이 사람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70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혼한 후에도 배우자가 연애할 때처럼 여전히 10개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7개를 해준다면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이 싹틀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혼하는 순간 배우자에 대한 기대수준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같은 7개로도 배우자에게 불만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이 들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에는 더 많이 성취하는 것 못지않게 바라는 것을 줄이는 방법도 있음을 일깨워 주고자 함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각 당의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이나 공약을 보고 있노라면 우려가 앞선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우리 재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선심성 공약을 내놓은 예가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절실하게 구애하는 청년을 보는 느낌이다. 애인에게 ‘나와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도록 해 주겠다’거나 ‘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사이거나 영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온 국민에게 ‘꽃길만 걷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보면 안보, 경제, 외교 등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과제가 없다. 지난 1월 20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강국의 주도권 다툼에 우리나라의 외교나 경제 모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달콤한 약속보다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에 입각한 솔직한 처방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전 국민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집결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당장의 인기 영합적인 정책이나 공약에 현혹되어 말뿐인 지도자를 뽑는 우를 범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더 이상 없다. 정치인들도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실현 가능성도 없는 빌 공(空)자 공약을 남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선거기간 동안 ‘잔뜩 부풀려진 기대수준’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온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ㆍ전 IMF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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