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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지워버린 구한말 소학교 역사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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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지워버린 구한말 소학교 역사 되살려야”

입력
2017.05.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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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박물관 운영 리진호 관장

1906년 보통학교로 개명하며

고종 때 세운 소학교 역사 지워

리진호 지적박물관장이 자신의 보물 1호인 비망록을 보여주며 구한말 소학교 역사 연구에 나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1999년 지적박물관을 설립한 그는 향토사, 역사서 등 60여권의 책을 냈다.
리진호 지적박물관장이 자신의 보물 1호인 비망록을 보여주며 구한말 소학교 역사 연구에 나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1999년 지적박물관을 설립한 그는 향토사, 역사서 등 60여권의 책을 냈다.

“일제가 왜곡한 우리 소(초등)학교 역사를 되찾아야 해요. 사료로 확인됐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서 지적(地籍)박물관을 운영하는 리진호(85) 관장은 요즘 마음이 급해 조바심이 날 지경이다. 일제의 농간으로 사라진 구한말 우리 소학교 역사를 되살리자는 자신의 외침이 10년이 다 되도록 허공만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학교와 교육청에 관련 증거자료를 보내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꿈쩍도 안 해. 교육부에도 세 번이나 건의서를 냈는데 묵묵부답인 건 마찬가지야.” 측량사이자 지적 연구가인 리 관장은 개화기 관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구한말에 설립된 소학교 역사가 깡그리 사라져 버린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을 중흥시키려는 고종의 조칙에 따라 1896년부터 전국 곳곳에는 공립 소학교가 설립됐다. 하지만 1906년 8월 일제 통감부가 보통학교령을 공포,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바꾸면서 이전 소학교 역사를 그대로 지워 버렸다. 1896년 1월에 설립한 대구초와 인천창영초는 각각 1906년 9월과 1907년 4월로 개교 시기가 바뀌어 10년 이상의 역사가 사라졌다. 1907년 8월 1일을 개교일로 기념하고 있는 김포초등학교도 실제 설립 시기는 1897년 9월 8일이다.

대구초·김포초 등 남한에만 121校

실제 설립일자와 10년 이상 차이

학교 100년史·개교일 시정해야

이렇게 일제에 의해 역사를 도둑맞은 초등학교는 전국적으로 121개교(북한 제외)나 된다. 1910년 경술국치일 이전에 설립한 초등학교 거의 대부분이 해당된다. 구한말 관보에서 당시 교원 임명 기록 등으로 이를 확인한 리 관장은 “일제가 자기들이 한국민을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꾸미려고 통감부 이전의 소학교 역사를 말살한 것”이라고 했다.

일제는 사립 소학교 역사도 날조했다. 애국지사나 지방 유지들이 교육구국을 위해 설립한 사립 학교를 공립보통학교로 다시 인가하면서 이전 학교 연혁을 잘라 없앤 것이다. 독립운동가 이용태 선생이 1911년에 세운 제천 봉양초의 경우 1928년 보통학교로 바뀌면서 17년의 역사를 몽땅 잃어 버렸다. 이런데도 우리 교육계는 날조된 역사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일제가 왜곡한 학교 연혁을 따라 ‘학교 100년사’를 편찬하고, 개교 기념일도 시정하지 않고 있다.

리 관장은 2008년쯤부터 초등학교 설립 역사를 바로잡자고 부단히 호소해 왔다. 해당 학교장과 각 시도교육청에 수도 없이 요청했고, 충북지역 교장과 교육청 간부들을 모아 놓고 특별 강연까지 했다. 하지만 학교 설립 시기를 올바르게 시정한 곳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

리 관장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최근 ‘개화기·일제 때 일본인 인명사전’을 펴냈다. 이 책에는 1876년 강화도 조약부터 일제강점기까지 70년 동안 한반도에서 위세를 부리고 치부한 일본인 4,600여명의 이력을 상세하게 담았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그는 6년 동안 일본학자가 쓴 인명사전 11권과 관련 논문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는 “친일 인물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친일파가 아부한 일본인에 대해 모르는 것은 반쪽 역사밖에 안 된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교육현장에서 일제의 날조된 학교역사가 굳혀진 데 대해 리 관장은 “이대로 가면 일제의 역사 농단은 영원히 묻히고 만다”면서 “그래서 역사 되찾기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지난 15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청와대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역사 바로잡기에 새 정부가 직접 나서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제천= 글·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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