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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완용 되더라도…” 김종필 전 총리 주요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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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완용 되더라도…” 김종필 전 총리 주요 발언

입력
2018.06.23 10:46
수정
2018.06.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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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반혁명세력과 반성하지 못한 기성 정객들 가운데 혁명정부의 뒤에서 유언비어를 조작, 날조하여 또다시 정치참여의 꿈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직책으로 젊은 장교들이 이번 5ㆍ16 군사 혁명을 일으킨 동기와 목적 등을 정확하게 밝힘으로써 이들 기성정치인들의 공상을 깨워주고 잡다하게 떠도는 데마 등을 일소하려 한다”

-1961.6.5 5ㆍ16 군사정변 목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일협정에 장애가 된다면 차라리 독도를 폭파해버릴까”

-1962.10 일본 이케다 수상과의 회담에서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1963.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정치인의 행로가 항상 순탄할 수만 있는가. 나의 쓰라린 행로를 신이 나에게 운명 지어준 시련으로 믿고 어떤 경우에도 열과 성을 다하겠다”

-1965.12 공화당 3차 전당대회

Figure 1고 김 전 총리가 자민련 명예총재였던 2003년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던 모습. 연합뉴스
Figure 1고 김 전 총리가 자민련 명예총재였던 2003년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던 모습. 연합뉴스

“1인자와 같이 걸을 땐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서 걸으라”

-1980. 정치활동 금지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5ㆍ16이 형님이고 5ㆍ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

-1987.11 관훈토론회에서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1990.10 기자간담회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뤄진다. 5ㆍ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며, 전두환, 노태우는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

-1993.5.16 5ㆍ16 민족상 시상식에서

Figure 2김종필 전 총리(오른쪽)가 2010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에서 신년 인사겸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등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위해 예방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Figure 2김종필 전 총리(오른쪽)가 2010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에서 신년 인사겸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등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위해 예방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태양이 떠있을 땐 촛불의 존재는 미미하지만 그래도 촛불은 타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져 밤이 되면 촛불의 빛은 더 밝게 온 세상을 비춘다”

-1994.1.14 민자당 중앙상무위 경제금융분과위 신년하례식에서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말라”

-1995.1.1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덕담하자

“인생이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것은 아니다”

-1995.1.12 기자간담회에서

“허공에 연을 띄워놓고 말하는 사람들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겠는가”

-1998.8.21 김윤환 전 의원과의 회동설에 대해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

-1998.11.18 MBC시사매거진 인터뷰

“하고 싶은 말을 골라서 하면서도 때를 맞춰야 하며 그러고도 안 될 때는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1998.12.15 자민련 중앙위원회에서 내각제 개헌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공동정권의 도덕적 기반은 신의이며 이것을 잃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1998.12.18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에서

“척하면 삼척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지만 대통령과 나는 척하면 삼십척이다”

-1999.1.14 자민련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

“물고기 한 마리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99.4.21 총리 재직시절 MBC의 ‘북한에 비료보내기’ 모금행사에서

“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

-2001.1 이인제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자신을 ‘지는 해’로 비유하자

“도지사,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에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우리 충청도인들을 핫바지라고 부르는 것 아니냐”

-2002.6.10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 상당구 정당연설회에서

“함장은 항상 군함과 함께 바닷속에서 장렬하게 죽는 법”

-2002.11.26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

-2004.4.19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2011.1.6 신년인사를 온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나”

-2013.12.10 운정회 창립총회에 참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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