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등 진보언론 의미 부여
보수는 식민시대 향수 부채질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8,9일 ‘전후 70년 해외 전몰자 위령’차 남태평양 팔라우를 방문한 것을 두고 일본 언론이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진보 성향의 언론은 역사와 과거를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자는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보수 언론은 팔라우 방문을 통해 식민시대 향수를 떠올리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9일 일왕 부부의 팔라우 방문을 “역사를 응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의미 부여했다. 신문은 사설에서 80세가 넘은 일왕 부부에게 쉬운 여정이 아님을 전제로, “풍화하기 쉬운 전쟁의 역사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뜻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일왕이 올해 신년사에서 ‘만주사변에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 점을 상기하며 “전화(戰禍)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아키히토 일왕이 “전쟁의‘기록과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걸 소명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아키히토 일왕이 왕세자 시절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1953년)에 참석하기 위해 첫 해외방문에 나섰지만, 일본이 과거 적국이라는 이유로 예정된 도시 방문이 좌절된 사례를 소개했다. 이때의 경험이 전쟁은 나라와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추모 행보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후루카와 다카히사(古川隆久) 니혼(日本)대 교수는 “깊이 추모한다는 표현으로 전쟁이 옳지 않다는 인식을 보였지만 확실히 일본의 책임에 대해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군인 외에 현지의 많은 일본인과 원주민이 식량난과 공습으로 희생됐다”며 “방문목적을 감안하면 민간인 피해도 언급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케이(産經)신문은 “친일국가 팔라우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통치하고 많은 일본인이 살았던 역사가 있다”며 다시 인연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전문가는 “팔라우 주민들이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그리워하는 듯한 인상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일왕 부부 방문을 계기로 팔라우는 일본인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의 한 여행업체에 따르면 2년 전만 해도 한해 일본 방문객이 700여명에 불과했으나 일왕 방문 가능성이 언급된 지난해 1,250명, 올해는 지난달까지 600명을 넘었다.
한편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팔라우에서 50km 떨어진 페릴류 섬으로 이동, 일본정부가 건립한 전몰자 비, 미군 전사자 위령비에 각각 헌화한 뒤 1박2일의 일정을 마쳤다. 일왕은 현지에서 “우리는 앞서 전쟁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고, 그 유족이 걸어온 고난의 길을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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