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분담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초유의 보육대란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들의 임금이 체불되기 시작했고 급식비와 난방비 지급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 등 일부 지역 유치원은 학부모에게 “원비를 낼 준비를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예산 미편성 소식에 유치원 입학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나왔다. 정부와 교육청의 치킨게임에 애꿎은 보육기관과 학부모들만 피해를 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정부와 교육청은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 여건이 개선돼 누리과정 재원 확보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시ㆍ도교육청은 “인건비 증가액과 지방채 상환액을 감안하면 쓸 돈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정은 아랑곳 없이 제 주장에만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수개월 전부터 예견된 보육대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현 상황으로 치닫게 한 정부의 무능과 협상력 부재부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지방교육청 탓만 하고 실질적 문제 해결은 등한시했다. “0~5살 보육 및 교육 국가 완전 책임”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애써 언급하지 않은 채 누리과정 예산은 법에 따라 교육청이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했다. 시ㆍ도교육청의 채무가 18조원이 넘어 파탄에 내몰리고 있는데 법을 지키라는 타령만 해봐야 공허하다. 당장 불을 꺼야 할 시점에 대법원 제소 같은 한가한 소리만 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보육대란이 현실화한 마당에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교육부장관과 시ㆍ도교육감의 오늘 면담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당정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청에 보내는 전출금의 조기 지급과 내부 유보금 활용 등의 방안이 거론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도가 준예산으로 우선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잔뜩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눈 앞의 보육대란을 어떻게든 막게 되더라도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잠시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갖가지 편법으로 접근해봐야 어차피 매년 이런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재정 분담 문제를 명확히 해결해야 한다. 크게 보면 증세 등 정부의 재정수입 확대와 복지정책과의 불균형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그게 어렵다면 국회와 정부, 교육감, 전문가가 참석하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누리과정 재원 문제의 최종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