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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헝가리의 트럼프’ 오르반 독주 막을까… 꿈틀대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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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헝가리의 트럼프’ 오르반 독주 막을까… 꿈틀대는 희망

입력
2018.03.01 14: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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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시장선거서 야당 깜짝 승리

총리 사위에 가로등 계약 몰아준

‘부패 스캔들’ 결정타로 민심 이반

#“난민은 독” 전기장벽까지 설치

反이민정책 효과에 지지율 높아

4선 유력 전망 속 EU와 마찰 우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달 18일 부다페스트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겐 헝가리가 우선이다’고 쓰인 단상 앞에 서서 반난민 정서를 자극하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달 18일 부다페스트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겐 헝가리가 우선이다’고 쓰인 단상 앞에 서서 반난민 정서를 자극하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부정부패가 이번 호드메죄바샤르헤이 시장 선거의 승부를 갈랐죠. 헝가리 가로등 계약을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사위가 소유한 회사에 몰아 준 ‘엘리오스 스캔들’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고, 상대편 야당 후보자에게는 흑색 선전의 좋은 소재가 됐으니까요.”

헝가리 정치연구소의 피터 크레코 연구위원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남부 도시 호드메죄바샤르헤이 시장 선거 결과에 대한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의 논평 요청에 이 같이 답했다.

이번 시장 선거는 야당 연합 후보(페테르 마르키 자이)가 57.5%의 득표로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여당 청년민주동맹(Fideszㆍ피데스) 후보(졸탄 헤게두스)를 누르고 당선됐다. 여당 후보 득표율은 41.6%에 머물렀다.

이날 외신들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170㎞나 떨어진 인구 4만7,000명의 이 작은 도시 선거 소식을 잇따라 타전했다. 이번 선거가 4월8일 총선의 향방을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로 관심을 모았던 까닭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선거 결과를 이변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4월 총선에 대한 전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이 선거전까지는 여당인 피데스가 압도적 지지율을 얻어 오르반 총리의 3연임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였지만, 이후에는 야당이 연합하면 여당을 누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오르반 총리는 여전히 4월 총선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헝가리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피데스의 그동안 승리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다”며 “총선에는 지금보다 3배의 노력을 더 기울일 것이기 때문에 호드메죄바샤르헤이에서와 같은 패배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공고한 ‘빅테이터(빅토르+딕테이터)’ 리더십

헝가리의 4월 총선은 최근 유럽 정치권에 부는 ‘우향우’ 현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를 가늠할 중요 사건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우파 성향의 집권당 피데스를 이끄는 오르반 총리가 있다.

헝가리는 의원내각제에 대통령제를 가미한 절충 형태의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총선 최대 관심사는 오르반 총리의 3연임 여부다. 1998년 35세 나이로 헝가리는 물론 유럽을 통틀어 최연소 총리가 된 그는 2002년 사회당(MSZP)에 정권을 내줬다가 2010년, 201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번에 피데스가 다수당이 되면 오르반은 3연임과 동시에 4선 총리가 된다. 총선을 불과 50여일 앞두고 각 여론 조사기관의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피데스는 50% 이상의 월등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제1야당인 우파연합(Jobbikㆍ요빅)은 지지율 20%를 밑돌고, 한때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해 이번 총선에서도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데스의 높은 지지율은 경제성장 등 실리적인 정책 덕분이다. 헝가리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3년 2.1%, 2014년 4.2%, 2015년 3.4%, 2016년 2.2%로 피데스 집권 시기에 꾸준히 상승했다. 2010년 집권 여당이던 사회당이 피데스에 자리를 내 준 것도 경기 침체와 늘어나는 실업률 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유권자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높은 지지율은 유럽 다른 국가 대비 두드러진 헝가리의 강력한 반난민 정책도 작용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동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주요 경로인 발칸 반도 국가들과 인접했기 때문에 헝가리는 시리아 내전 이후 한때 불법 체류자 유입이 급증했다. 유럽연합의 통계 담당 기관인 유로스태트(EUROSTAT)에 따르면 2015년에는 17만4,000여명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는 당시 EU 내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오르반 총리는 난민을 ‘독(毒)’으로 지칭하며 강경한 반 난민 정책을 고집했다. 국경 일부에 전기가 흐르는 장벽을 설치해 국제적 비난을 샀지만, 2016년에는 2만8,000여명으로 난민이 줄었다.

오르반 총리의 정책은 아직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지만, 독재에 가까운 일방적인 방식이어서 민주주의의 퇴보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각종 꼼수를 동원해 언론을 장악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공영방송 핵심 요직에 측근 인사를 배치해 효과적으로 장악했다. 친정부 성향 미디어에는 광고비를 퍼부었고 반대로 비판적 매체의 광고비는 대폭 삭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 호의적인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선전전은 다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국정 지지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연히 정경유착 등 ‘정실 자본주의’도 더 공고해졌다. 사위인 이슈트반 티보르가 소유한 회사가 헝가리 가로등 계약을 입찰 받은 게 대표적인 예다. EU 부패감독청(OLAF)은 이와 관련해 EU 집행위원회에 EU기금 일부를 회수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 내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자국 출신 미국인 부호 조지 소로스를 겨냥해 그가 세운 중앙유럽대학(CEU)을 폐교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시민단체 자금 내역을 공개토록 했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는 민주 국가지만 개인적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는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를 주장해 EU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서 오르반 총리를 ‘빅테이터(빅토르+딕테이터(독재자))’로 묘사하는 이유다. 특히 지식인 사이에 반감이 커 헝가리 대표 영화감독 벨라 타르는 오르반 총리에 대해 “헝가리 최악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오르반 연임 성공 시 난민 정책은

야당이 호드메죄바샤르헤이 시장 선거 승리의 여세를 상승 국면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 헝가리는 정치분석가들의 전망대로 우파 정권 연장에 들어간다. 피데스가 총 의석 199석 중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2 이상을 확보하면 오르반 정부의 우향우는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반난민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달 18일 국정 연설에서 “그리스,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을 회원국에 분산 수용하려는 EU의 구상은 좋지 않다”면서 “누구를 받아들일지는 회원국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민자들이 우리의 안보와 생활방식, 기독교 문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급격하게 증가한 난민을 “유럽 위로 드리운 먹구름”이라고 매도했다.

EU와의 마찰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헝가리는 2021년까지 7년 동안 EU로부터 250억유로(약 33조원)의 경제 개발 자금을 받는 회원국 내 최대 수령국가다. 하지만 헝가리는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EU의 정책적 통일성에 불만을 제기하는 회원국이다.

다만 피데스 압승이 경제적으로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피데스가 승리하면 정부 정책에 큰 변화가 없어 낮은 재정수지 적자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며 “이는 투자자들에게는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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