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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29 04:40
수정 : 2017.07.01 15:58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물리학 연구의 첨단주제는 ‘스타 트렉’에서 나왔다

등록 : 2017.04.29 04:40
수정 : 2017.07.01 15:58

<8>‘스타 트렉’의 아버지 진 로덴베리

#1

조종사 출신 작가 상상력의 결실

60년대 후반 TV드라마로 첫 전파

반세기 걸쳐 속편, 영화, 애니 제작

#2

초광속 비행, 순간이동 등 파격적

훗날 물리학 연구로 가능성 열어

미국 첫 우주왕복선 이름도 따와

#3

인류사회 갈등 없는 23세기 배경

서부개척 서사로 미국 이상 담아

인종차별 등 통념 깨뜨려 충격 커

1966~69년 미국 TV드라마로 처음 방영됐던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스팍(왼쪽)과 커크.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함장과 과학장교 스팍은 우주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NBC 제공

21세기에 영화로 제작된 ‘스타 트렉 다크니스’(2013)의 스팍과 커크. 배우들이 바뀌고 특수효과는 화려해졌지만 설정은 그대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968년 미국의 한 TV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키스 장면이 나왔다. 나중에 미 문화사의 아이콘이 될 만큼 유명한 키스신 중 하나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여전해 손잡는 것조차도 금기시되던 시절에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이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아시아인이나 흑인이 비중 있는 배역으로 나와 방송 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유색인종은 대개 하인 아니면 악당 등 보잘것없는 조연으로나 캐스팅되던 때였다. 바로 23세기 미래라는 배경을 통해 당대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 미국의 국민 SF드라마, ‘스타 트렉’이다.

사회의 금기와 과학의 불가능을 허물다

1966~69년 오리지널 시리즈가 방영된 이후 지금까지 50년에 걸쳐 속편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이 이어지고 있는 ‘스타 트렉’은 TV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였던 진 로덴베리의 창작물이다. 그가 ‘스타 트렉의 아버지’로서 남긴 사회적, 과학기술적 영향은 광범위하다. 당시 미국 사회의 경직성을 과감하게 뒤흔드는 화두를 던졌고, 그에 못지않은 과학적 영감을 제공했다.

로덴베리는 특히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정들을 대거 채택해 거꾸로 이를 가능케 할 이론을 궁리하도록 과학계를 자극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초광속 우주비행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SF에 흔히 등장하는 초광속 우주선은 웜홀이나 공간도약 등 검증되지 않은 가상의 수단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1994년에 멕시코의 젊은 물리학자 미겔 알쿠비에레가 초광속 우주여행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이론적 논거를 밝힌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우주선 뒤쪽의 시공간을 팽창시키면 그것이 우주선을 앞으로 밀어내어 결과적으로 초광속 항행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현재의 물리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부수적인 위험성이 존재하는 등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많아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초광속이 결코 과학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 데 있다. 게다가 알쿠비에레의 논문에 사람들이 환호한 까닭이 있었다. 그가 시공간 압축을 이용한 이동을 의미하는 단어로 논문 제목에 쓴 ‘워프 드라이브(warp drive)’라는 표현이 바로 ‘스타 트렉’의 ‘워프 항법’에서 따왔다는 점이다.

‘스타 트렉’에서 엔터프라이즈호는 워프 엔진으로 초광속 비행을 한다. 1994년 한 물리학자는 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 않는 초광속 비행의 가능성을 논문으로 발표하며 ‘워프 항법’이라 일컬었다. 사진은 영화 ‘스타 트렉 더 비기닝’(2009)에 등장하는 우주선.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최초의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호. '스타 트렉' 팬들의 요구로 커크 함장이 몰던 우주선의 이름을 땄다. 시험기종으로 실제 우주비행에 나서지는 못했으나 우주개발 시대를 연 상징적 기종이다. NASA 제공

앞서 1993년에도 ‘스타 트렉’에 나오는 SF 설정이 물리학 논문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찰스 베넷 등 유럽의 물리학자 6인이 공동으로 양자의 순간이동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스타 트렉’에서 가장 유명한 설정인, 우주탐사대원들의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트랜스포터’라는 장치의 이론적 근거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다. 사실 트랜스포터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순간이동을 하는 대상물이 클수록 정보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순간이동을 한다면 신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분자와 원자들의 구성정보부터 신체조직의 설계도, 현 상태를 가리키는 정보 등을 모두 다 옮겨야 하는데, 이 정보량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해 별도의 대량 정보 저장ㆍ전달 수단이 필요하다. 게다가 인간 신체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을 해체, 이동, 조립하는 과정 각각에도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한 1993년의 논문 이후 많은 실험들이 성공해서 2004년 6월 17일자 네이처지에 양자의 원격이동 실험 논문이 표제로 수록되기에 이르렀다.

'스타 트렉'에 나오는 순간이동 장치 트랜스포터. NBC 제공

60년대 미국의 빛과 그늘 암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스타 트렉’이라는 미래 서사는 개척정신과 진취성을 대변하는 국민 신화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기본 설정부터 서부 개척, 식민지 진출을 연상시키는 미국식 팽창주의의 산물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탄생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의미심장한 맥락이 더 포착된다.

저명한 SF 평론가인 브루스 프랭클린에 따르면 ‘스타 트렉’의 오리지널 TV시리즈가 방송되던 1966년 9월부터 1969년 6월까지는 미국 역사상 매우 흥미로운 시기였다. 밖으로는 월남전이 한창이고 안으로는 범죄율이 높아지는 한편 반전평화운동의 물결이 거세지고 여성운동이 부상하는 등 전통적 가치가 급속히 붕괴됐다.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가계 빚까지 늘어난 시기였다. 그러나 ‘스타 트렉’에서 묘사된 23세기 미래세계는 사회 갈등이 거의 없이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거대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와 승무원 집단은 그 자체로서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실현시킨 작은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월남전 이후의 장밋빛 미래상을 미리 보여준 셈이다.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통신장교 우후라. 백인인 커크와 흑인인 우후라의 키스신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인류에게 차별과 갈등이 사라진 23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SF 드라마에는 흑인, 아시안 배우들이 전문직 역할을 맡아 파격적이었다. NBC 제공

1967년 4월에 방송된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는 오늘날 오리지널 TV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팬들의 반응이 좋았던 동시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에피소드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선장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시간여행을 하여 1930년대의 뉴욕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에디스라는 천사 같은 여성을 알게 된다. 그런데 헌신적인 사회사업가이자 빈민들의 벗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충격적인 운명이 닥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개연성과 상관관계를 미리 알 수 있는 장치로 검색해 본 결과 그녀는 곧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죽지 않도록 도와 줄 경우, 나중에는 커크 일행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는 귀결을 맞는다. 에디스가 교통사고에서 살아나면 나중에 거대한 평화운동 조직을 만들게 되는데,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초래하여 커크가 사는 23세기의 행복한 미래세계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자신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물줄기를 나쁜 쪽으로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노골적이다. 아무리 고상하고 숭고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라도 역사를 그르칠 수 있으며, 때로는 더럽고 내키지 않는 일도 불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결국 월남전에 뛰어 든 미국의 입장을 은연 중에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진 로덴베리라는 상상력의 구루

고백하자면 필자는 ‘스타 트렉’보다 진 로덴베리라는 인물에 더 애착이 간다. 어린 시절 TV에서 ‘전자인간 퀘스터’라는 SF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간 접했던 다른 SF 영화들과는 달리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색다른 관점으로 아우르는 장대한 스케일의 작품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퀘스터와 같은 로봇들이 일종의 초월적 관찰자로서 인류 역사에 적절히 개입하고 관리해 왔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모든 것의 진상을 깨달은 한 인간이 스스로 장렬한 최후를 맞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성인이 된 뒤에야 이 작품이 진 로덴베리의 미완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타 트렉’처럼 TV시리즈로 제작하려고 만든 첫 번째 파일럿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몇몇 장면들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할 만큼 좋아했기에 시리즈로 이어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시청률을 계속 의식해야만 했던 방송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작가로서 진 로덴베리는 당시까지 대중들에게 그리 친숙하다고 할 수 없었던 SF장르를 훌륭하게 주류문화로 안착시켰다. ‘스타 트렉’에는 초광속 비행이나 순간이동 외에도 인공지능 로봇, 나노봇, 화상통화 등 과학기술적 영감이 충만했다. 사회적으로도 통념을 뒤집은 과감한 아이디어들을 내놓아 20세기 문화사에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장구한 세계 문화사에서 길지 않은 한 시대, TV라는 매체의 부흥기에 그와 같은 인물이 활약한 것은 SF에, 그리고 인류에 적지 않은 행운이었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진 로덴베리

1921년 8월 19일~ 1991년 10월 24일. 미국의 TV각본가, 프로듀서.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항공대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제대 뒤 민항기 조종사, LA경찰국 경관 등으로 일하는 한편 당시 새로운 매체로 부상하던 TV의 드라마 각본 집필에 뜻을 두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점점 인정을 받게 되자 35세에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64년에 초고를 완성한 ‘스타 트렉’은 MGM, CBS 등에서 거절당한 뒤 1966년에야 NBC에서 전파를 탔다. 그가 작고한 뒤 화장된 유해 일부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및 페가수스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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