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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귀를 기울이면

입력
2017.09.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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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 찬성을 호소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주민 찬성을 호소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사진은 힘이 세다. ‘펜 기자’로 매일 무언가를 써대지만 어떤 사진에는 문장이 넘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힘이 있다. 공감을 형성하고 반성을 자아내고 때론 공분을 일으키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선 어떤 글이 사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근래에도 이런 사진이 적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박주민 의원을 위해 도라에몽 인형 탈을 쓰고 땀에 젖어 춤을 추는 유세 사진은 슬픔을, 정치인들의 ‘노룩 패스’나 ‘황제 장화’ 사진은 씁쓸한 실소를, 피투성이가 된 채 가해자 앞에 무릎 꿇은 폭력 피해자의 사진은 분노를 불러왔다.

최근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 또 하나의 사진은 장애 학생 부모들의 ‘무릎 호소’다. 특수학교 신설을 논하기 위해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주민토론회에서 반대 주민들의 욕설과 고성이 계속되자 장애 학생 부모들이 강당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얬다. 취재 현장에서 꼭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 건 6년 전 해병대 총기살해범의 공개재판에서가 마지막이었다.

소총을 쏴 부대원 4명을 숨지게 한 A 상병의 첫 공판이 열린 경기 화성시 해병대 사령부 군사법원 법정. 공판 내내 숨죽여 울던 여러 유족과 가해자 A 상병의 부모가 재판 후 법정 밖에서 맞닥뜨렸다. “부모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무슨 면목으로 변호사를 사서 아들을 변호하냐”고 묻는 유족 앞에서 A 상병의 엄마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고 한 동안 말 없이 흐느꼈다. 그녀가 살인한 아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장애 학생 부모들은 무고한 아이들을 위한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살인에 비견할 큰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떨군 채로.

즉각 엄마들에게는 격려가, 반대 주민들에게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은 한 번 더 복잡했다. 그 날 엄마들을 무릎 꿇린 것은 누구였나. ‘반대 주민들이나 한방병원 제안으로 갈등을 키운 정치인만 악마화할 자격이 내겐 있는가’란 주저 때문이다. 나라면 이런 처절한 무릎 호소를 보기 전부터, 즉 처음부터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흔쾌히 환대했을까’라는 자책 때문이다.

무릎 호소의 뒤에는 비단 반대 주민들의 고성과 욕설뿐 아니라 그런 슬픈 호소만이 세간의 이해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무관심과 냉대가 자리했던 것은 아닐까. 특수학교 등교를 위해 하루 1,2시간을, 심지어 강원 지역에서는 3,4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는 학생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여태 알지 못했던 날들도 스쳤다. 이런 매정함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결국 토론회는 “쇼 하지 말라”는 삿대질과 반대 측의 ‘맞불 무릎’이라는 혼란 속에 끝났지만, 그 날 이후 비로소 관심과 경청의 장을 얻게 된 장애 학생 부모들은 차분히 특수학교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나가고 있다. 며칠을 아득한 비관 속에 허우적대던 나는 역설적으로 이런 부모들의 태도에 감동했고 배울 점을 봤다.

“제게도 장애 아이가 없었다면 반대 주민들과 입장이 비슷했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봤으면 좋겠다”거나 “학생과 이웃이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조율할 방법은 있을 것”이라는 호소에는 경청의 지혜, 이해의 의지가 한껏 묻어났다. 본인 자녀는 학령기가 꽉 차 앞으로 들어설 학교에 보낼 수도 없지만, 토론회 참석은 꿈도 못 꾸는 더 어린 아이와 부모들을 위해 대신 나선 이들이었다.

이 선하고 마땅한 목소리가, 처음부터 경청됐어야 할 목소리가 이제서야 들려온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단 특수학교뿐 아니라 처음부터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다. 더는 아무도 무릎 꿇리고 싶지 않다면, 이제는 모두가 서로 경청하고 이해하고 응답해야 한다. 당장 내일이면 듣지 못하게 될 사람처럼, 절실하게.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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