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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선 70대도 '청년'… 아내는 벌써 날 村老 취급하네

입력
2015.02.1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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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 할아버지 칠순 잔치 갔더니

주인공은 앉아 있을 여유도 없이

오히려 어르신들께 술 봉사 바빠

그분 송이 채취 따라간다 했더니

동네형님이 극구 말리는 이유

"날렵한 청년… 넌 길 잃는다"

봄기운을 살짝 담은 흙 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하면 마을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노래방 기기나 밴드 대신 장구와 꽹과리 비트만으로 어깨춤이 절로 난다. 어르신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의미가 없다. 모두가 청춘이다.
봄기운을 살짝 담은 흙 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하면 마을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노래방 기기나 밴드 대신 장구와 꽹과리 비트만으로 어깨춤이 절로 난다. 어르신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의미가 없다. 모두가 청춘이다.

新 청년시대

집채 만한 트랙터가 진흙을 하늘로 날리며 앞서 간다. 어디선가 금방 논을 갈고 나왔나 보다. 나는 아직 몸이 덜 풀렸는데 겨울 땅은 벌써 깨어난 걸까. 아직은 아닐 거다. 봄 맞이가 어쩌구 라디오랑 TV에서 떠들더니 며칠째 된통 무거운 바람이 겨울나무를 뒤흔든다. 의상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방송들은 왜 시절을 앞서가며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봄을 준비하라는 입춘(立春)인데 봄에 들어서는 입춘(入春)으로 알고 있나 보다. 그냥 봄이 머지 않았다고만 해도 좋겠구만.

봄 타령에 떠밀려 나와 매실나무 가지치기를 끝내고 감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나무 모양을 살펴보니 하늘로 쭉쭉 뻗은 도장지(徒長枝, 웃자란 가지의 일본식 표기)가 꽤 눈에 띈다. 영양상태가 과도할 때 나타나는 모양이란다. 사실 가지치기 라는 게 나무가 지 맘대로 자라게 놔두지 않고 열매가 잘 열리도록 인위적으로 모양을 잡는 것이니 정작 나무에게는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가지를 끌어당겨 묶고, 비틀어 휘고, 톱으로 자르고, 가위로 쳐내고 하는 것이 나무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 먹을 열매를 쥐어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무라고 성질이 안 나겠나. 내 눈에는 하늘을 향한 가지들 모양이 열 받아 뻗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냥 놔두면 어떻게 자랄까. 감나무 고목은 어떻게 생겼더라’ 하는데 언뜻 떠오르질 않는다.

“올해는 너무 자르지 마.” 장씨 아저씨가 어느 새 뒤로 다가오시며 나무를 쳐다보셨다. “많이 잘라낸다고 좋은 거 아니여.”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제서야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잘해보겠다는 생각에 눈이 멀다 보니 귀도 안 들렸던 모양이다. “예, 그래야 되겠어요.” 대답하는데 저만치서 아주머니 모습도 보인다. “오랜만에 뵙네요. 들어가서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인사를 건넸더니 아저씨가 “자네는 맨날 나 땜시 일도 제대로 못 허네이” 하신다. 좋다는 말씀이다.

수도가 얼어서 받아놓은 물로 대강 컵을 헹구고 차를 끓여 드렸다. “고춧대 모타 놓은 거 지금 태워도 될랑가?” 아저씨가 물으셨다. 작년까지 겨울엔 내가 산불감시원 활동을 했던 터라 연기 나면 쫓아가서 물 뿌리는 게 일이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있어서 신청을 안 했다. 혹시 고춧대를 태우면 감시원들이 쫓아오냐고 물으시는 거다. “지금은 안돼요. 1월 달에 태우시면 됐었는데” 했더니 아주머니가 말을 받으신다. “그러게 내가 얼릉 태워 뿔자고 했잖아요. 이 양반은 왜 꼭 미리 미리미리 안 허고 미루고 미루다 고생하나 몰러.” 아저씨도 목소리를 높이셨다. “허어 이 사람 뭘 몰라도 몰라. 잘 들어보소. 뭔 일을 해야 헌다고 쳐. 근디 당장 하루가 급한 일은 아니라고 치세. 그라믄 좀 미룰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다 못내 해야 되면 그때 하면 되는 거고, 더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미루다가 꼭 안 해도 돼서 안 허게 되면 그게 잘 허는 거지. 뭐할라고 일을 찾아 댕기면서 헌당가. 자네, 안 그려?” 나한테 동의를 구하시는데 “그러게요” 말은 했지만 끄덕이던 고개가 점점 멈춰졌다. 아주머니는 눈을 지긋이 감고 콧잔등만 쓸어 내리셨다. 동의하시는지 아닌 지 알 수가 없다.

아는 분 칠순 잔치가 있어서 일어서신다기에 “아저씨도 쫌 있으면 칠순이시네요. 뚱따당 한 번 하셔야죠” 하니 손사래를 치신다. “난 그런 거 안 해.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먹으면 되얐지 뭐 얼매나 살았다고 잔치 당가.” 하긴 내가 생각해도 아저씨와 칠순 잔치는 잘 안 어울린다. 자전거 타실 때 뒷모습은 청년 같고, 농사 얘기 하실 땐 형님 같은 분이다. 용돈 보내드린다는 사위에게 “나 그 돈 없어도 사니께 나한테 보낼 여유 있으면 어려운 데나 기부하게” 하셨다는데, 그런 아저씨 앞에 한 상 차려놓고 한복 입혀 드린 모습은 언뜻 떠올려지지 않는다.

동네에서도 사실 칠순 잔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굳이 말하자면 칠순을 맞으신 분의 자제들이 마을회관에서 동네 분들께 식사 정도 대접하는 자리다. 축의금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칠순 주인공이 연배가 더 높으신 분들께 술 따라드리기 바쁘다. 얼마 전에도 뒷집 아버님이 칠순 자리를 마련하셨는데, 앉을 여유도 없이 연배 높은 어르신들께 술 봉사를 하면서 축하와 감사 인사를 주고 받았다. “허어, 자네가 벌써 일흔인가? 금새 따라왔구만” “그리게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구만요.” “그래도 아직은 이 동네서 자네만큼 일 잘 허는 사람 없을 것이여. 힘으로도 그렇구.” “그거야 뭐 저두 자신하지유. 아직은...”

여전히 전설을 품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의 겨울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시나브로 초록을 준비할 때가 됐다. 자연의 변화는 불현듯 다가온다.
여전히 전설을 품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의 겨울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시나브로 초록을 준비할 때가 됐다. 자연의 변화는 불현듯 다가온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 아버님이 송이버섯 나오는 자리를 많이 아신다기에 “저도 한 번 따라가겠습니다” 했더니 동네 형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어이, 절대 안돼. 따라가지 말어.” 의아했다. 버섯이 많이 나올 땐 구례에서 개도 물고 다닌다는 송이 한 번 먹어 보겠다는데, 나한테 해코지 하실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척 보면 모르겄냐. 저 아제 몸 좀 봐라. 완전 날렵한 청년이여. 아제 따라갔다가 산에서 길 잃어버리고 고생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딱 봉께 너는 보나 마나여.”

이곳에서는 만 65세가 돼서 국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청년일 뿐이다. 아마 일흔이 넘어서도 당신들 맘은 청년인 듯 하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농사철에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이들 저리 가라다. 근력, 순발력, 지구력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다. 주(酒)력도 마찬가지다. 술자리 눈치보다 조용히 빠지려 하면 벌써 일어나냐고 붙잡는 분들이 거의 70대 아버님들이다.

농업기술을 배우는 교육장소에 가보면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맨 앞줄부터 거의 나이 순으로 앉는다. 젊은 것들은 맨 뒤에 앉아 곁눈질로 보고 듣는걸 좋아하는 반면, 팔순이 다 된 어르신들은 돋보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필기도 열심히 하고 강의 끝엔 폭풍질문을 쏟아 붓는다.

예전에 미국유학을 갔다 온 친구 얘기가 떠올랐다. 다니던 학교 학생 중에 노인이 있어 물었단다. “할아버지, 지금 공부해서 뭐에 쓰시게요?” 했더니 노인은 “미래를 위해서”라며 씩 웃더란다. 노인이 말하는 미래, 내겐 충격이었다. 그 친구가 얘기한 노인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아 수업 중에 어르신 모습을 훔쳐볼 때가 많았다. 안경 너머로 기운을 뿜는 꿈꾸는 할아버지...

다른 예도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출장 온 후배가 농장에 들렀는데 백발의 노인(?)이 동행하셨다. 후배가 아는 분이라는데 퇴직 후에 이일 저일 찾아보고 해봤지만 마땅치 않았고, 그러느니 귀농이나 할까 하고 와보셨단다. 말씀 중에 ‘그러느니’라는 말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경청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듣기가 어려웠다. “다 늙어서 뭘” “이제 뭐 얼마나 산다고” “그냥 소일이나 하면서” 이런 말씀이 대부분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연세를 여쭈니 “예순둘!” 이시란다. 그 나이면 동네 청년회에 들어와도 ‘넘버 3’다. 본인의 ‘늙었다’는 생각 따라서 모든 게 그렇게 늙어버린 분 같았다. 신중히 생각하십사 부탁 드렸다.

구례 동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선재가 오늘 졸업을 했다. 축제 형식으로 치러진 졸업식에서 2학년 후배들이 축하공연에 한창이다.
구례 동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선재가 오늘 졸업을 했다. 축제 형식으로 치러진 졸업식에서 2학년 후배들이 축하공연에 한창이다.

저녁에 전 이장님 댁에서 식사하러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귀농을 준비할 때부터도 그랬고, 내려와서 지금까지 친부모님처럼 마음을 써주시는데 그 절반도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죄송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집에 있던 과일 몇 개 챙겨서 아내와 건너가니 방금 무친 나물에 부침개, 생선구이까지 상이 넘치게 반찬을 올려주셨다.

“아버님, 오늘 무슨 날인가요?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왔는데요.” “아니여, 우린 맨날 이렇게 묵어. 똑같은 상에 수저만 더 놓는 거여. 오랜만에 왔응께 많이 들어이.” 깜빡 속을 만큼 듣기 편하게 말씀하셨지만 아닌걸 안다. 언젠가 연락 없이 들렀을 때 두 분이 잡숫는 걸 봤는데 정말 소박한 상이었다. 특별히 신경 써서 차려주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맛있게 많이 먹는 게 최선의 보답이다.

진짜로 많이 먹었다. 상을 물리고 나서 몰래 허리띠를 풀고 있는데 “올해 나무 좀 심어 볼까 하는데 뭐가 좋으까. 자네 혹시 생각해둔 거 있능가?” 물으셨다. 그렇잖아도 재작년에 심은 감나무 묘목이 뿌리가 약해서 그런지 잘 자라지 않는 것 같아 며칠 궁리를 하던 중이었다. “손이 덜 가는 걸로 치면 호두나무가 좋다고 하던데요.” 전 이장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나 보다. “그려, 청솔모만 아니면 호두가 괜찮은디, 국산 호두는 잘 팔린다고 허니까이.” 그런데 말씀을 드리고도 조금 머뭇거렸다. 호두는 묘목을 심으면 10년, 접목을 해도 7년 정도는 돼야 수확할 수 있는데, 어르신 연세가 벌써 여든에 가까우니 말이다. “아버님, 한 7,8년은 잡아야 된다는데요...” 말끝을 흐렸다. 전 이장님 생각은 달랐다. “당연히 그 정도 걸리겄지, 감나무도 3,4년은 기다리는디 거다 몇 년만 더 보태믄 되는 것 아닌가?. 할 만 한 것이여” 죄송스러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움직이진 않았지만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침 뒷설거지를 마친 어머님이 과일을 내오시고 뒤따라 아내가 커피를 들고 왔다. 무슨 말이든 해보려다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커피가 싱거워. 물이 많았나 봐.” 아내가 옆 눈으로 바라본다. “시골 아저씨 다 됐어요. 커피도 찐하게 달라고 하는걸 보니.”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며 쳐다보니 한 마디 더 보탠다. “잘 씻지도 않구, 수염도 잘 안 깎구, 머리는 하얘지구,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 같애요 아주 그냥.”

대꾸하기 뭐해서 눈짓으로 혼자 얘기했다. ‘그래? 잘 됐네. 내 꿈이 촌로(村老)인데 벌써 꿈을 이뤘네. 알아주니 고마우이. 이제 무슨 꿈을 다시 꿔 볼까나.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봄맞이 늦둥이나 한 번?’ 아내에게 눈을 씽긋거리자 뭘 알아챘는지 얼굴을 휙 돌려버린다. 언감생심, 씨알도 안 먹힐 일이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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