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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모범·체면을 먹고 크는 '일탈의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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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모범·체면을 먹고 크는 '일탈의 욕구'

입력
2015.03.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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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들의 믿지 못할 기행

억압 속에서 튀어나오는 내면

인터넷 포탈 등에 유신독재 옹호, 특정 지역 비하 등 막말과 직무 관련 글 수천 건을 7년 동안 올려 지난 달 사직한 댓글 판사. 법관으로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그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의 행위라고는 믿지 못했다. 그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 한 법관은 “굉장히 조용한 성격으로 남들 앞에서 자기 주장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 편이었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8월 ‘바바리 맨’류의 국부 노출 범죄로 사법처리 됐던 지방검찰청의 한 지검장도 평판이 좋은 강골 검사였다. 그가 직접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내가 아니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하자 그를 아는 기자나 지인도 “그럼 그렇지, 설마 진짜 그랬겠어”라고 생각했다. CCTV로 그의 행위로 확인됐을 때 정신과 의사도 익숙지 않은 ‘성 선호성 장애’, 쉬운 말로 성 도착증으로 진단돼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이상행동에 빠질까. 지도층의 두 얼굴은 드문 현상도 아니다. 매춘 반대운동의 기수였던 엘리어트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는 그 자신이 고급 매춘 클럽의 고객이었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꾸짖었던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은 남자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요구하다 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그는 동성애 반대론자다. 소아성애자가 다수 드러난 세계 가톨릭 성직자들의 추문은 바티칸의 골칫거리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욕구가 적은 게 아니다”며 “그런 사람들일수록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욕구를 억누르는 데만 익숙해져서 일탈 행동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사회적 체면 유지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일수록 어두운 충동을 분출하고 싶은 욕구도 그만큼 강렬하다는 게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이다. 사회적 존경과 명예를 원했던 지킬 박사도 소설에서 자신의 완벽하지 못한 면들을 철저하게 숨겨야 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럴 경우 불륜, 도박,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지난해 10월 지검장의 노출증 범죄가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됐을 때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엉뚱한 실수”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책임에 따른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일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본인 스스로 억제, 치유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판ㆍ검사는 과도한 업무량에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결정 피로’에 시달리는 직군이라 자기 조절력이 떨어져 충동이 외부로 발현되는 자아고갈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정신과 의사들의 설명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문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 테두리 내에서 욕구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해소할 수 없거나 또는 자신이 문제행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껴안고 있다가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며 “직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에는 상담 서비스를 갖추거나 스트레스 관리를 해줄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회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모범적 행동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누구도 늘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최소 14명의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졌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나는 인간이고, 그래서 완벽하지 않다(I am human and I am not perfect)”라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며 “억압을 많이 당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는 통합된 자기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숨겨진 내면의 요소가 튀어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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