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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등록 : 2017.04.30 10:22
수정 : 2017.04.30 10:22

[김영민 칼럼] 5월의 신랑 신부에게

등록 : 2017.04.30 10:22
수정 : 2017.04.30 10:22

외모에 의존하는 결혼생활 한계 있어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너무 비난 말고

상대 따뜻히 대하는 습관 일상화하길

안녕하세요, 신랑과 신부를 가르친 인연으로 결혼식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 신부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는 적극적인 학생들이었고, 통찰력 있는 반론으로 선생님을 압도할 정도로 총명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신랑 신부라는 역할을 맡았기에 제게 감히 질문이나 반론을 던질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마음대로 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두 사람의 비밀을 폭로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이 제게 찾아와 결혼식 축사를 부탁했을 때,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거지? 결혼제도의 정치적 분석 같은 것을 바라는 걸까... 곰곰 연구해본 결과, 신랑 신부가 제게 결혼식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아마 그들은 다음과 같은 기대를 가진 것 같았습니다. 신부 입장에서는 신랑이 얼마나 잘 생기고 멋진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해주었으면, 그리고 신랑 입장에서는 신부가 얼마나 똑똑하고 눈부신 미인인지 자랑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을 상당 기간 알고 지낸 저로서는,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외모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맞아 자신들이 빼어난 미남미녀라는 사실을 선생의 입을 빌어 만천하에 공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건 신랑신부의 생각일 뿐,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객들이 보시기에 미남미녀가 아니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제가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진짜 미남미녀라면 그저 보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을 금방 알아볼 테니,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쁘고 잘 생기면 뭐하겠습니까. 오랜 시간을 함께 살고자 결혼식을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청춘의 아름다움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고, 빛나는 외모는 장기적으로 결혼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애 기간 동안에야 상대에게 화가 나려고 하다가도 잘생기고 예쁜 얼굴을 보다 보면 저절로 화가 수그러들곤 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결국 늙고 피부의 탄력은 사라지고, 아랫배는 나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탈모라는 충격적인 현실이 다가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화낼 일이 없었는데도, 얼굴을 보다 보면 그냥 화가 나버리는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요컨대 서로의 외모가 생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는 때가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겁니다. 따라서 이제 제가 살면서 들은 조언 중에서, 외모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 두 가지 가설을 골라 전해주겠습니다.

첫째, 아무리 부부지만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각자, 상대가 모르는 외로운 전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배우자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외로운 싸움을 혼자 수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외로운 전투 중인 상대를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둘째, 살다 보면 둘 중 한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나머지 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잘못을 한 상대보다 우위에 서게 되고, 사정없이 비난을 퍼붓게 되기 십상입니다. 바로 그 순간, 제발 정도 이상으로 잔인해지지 말기 바랍니다. 외로운 전투 중에 실수한 상대를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요컨대, 상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일상적인 습관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감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그 애정이 이 따뜻함의 습관을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보다는 거꾸로, 일상적으로 따뜻함을 실천하는 습관이 길게 보아 두 사람 간의 애정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는 결혼생활 내내 이 가설을 테스트해 본 뒤, 타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는지 나중에 알려주기 바랍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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