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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4차 산업혁명’이란 순진한 말

입력
2017.06.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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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등은 컴퓨터 기술의 연장?

‘인간 위한 기술’에 한정하기 어려워

꿈지럭거리는 사회제도 변화가 문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2016년 초 다보스포럼에서 갑자기 사용된 그 말은, 한 세대 전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실체 없는 거품일까?

3차 산업혁명이 이미 컴퓨터의 발전에 근거한다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기술은 어쨌든 컴퓨터 기술의 연장이 아닌가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전기에 의해 구별된 1차와 2차 산업혁명과 같은 명확한 경계가 3차와 4차 사이에는 없어 보이며, 또 이제까지 산업혁명은 각자 고유한 생산양식 및 사회질서의 변화를 유발했는데 4차는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3차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질서가 여전하고 4차가 유발하는 사회변화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말에 낀 ‘거품’을 터뜨린다.

이에 대해 거꾸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라며, 4차 산업혁명은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산업의 도구로 기능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자, 이 전제 자체가 거품일 수 있다! 근대 초기에 기술은 그래도 인간을 위한 산업발전에 기여했지만, 인간을 위한 기술의 도구적 역할은 20세기 중반 무렵부터 이미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 자동화 시대이다. 그러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도입과 함께 사회적 관계망의 작동 자체가 기술에 의존하는 시대가 열렸고, 따라서 인간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던 전통적 질서는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사회적 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한 셈이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거기에 더해 더 이상 산업혁명이라는 관점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여전히 세계와 사회의 중심에 있고 기술은 기껏해야 인간을 위한 산업발전의 도구일까? 그렇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란 구호는 순진하거나 구태의연한 면이 있다. 기술은 단순히 산업의 도구가 아니며 좁은 뜻의 과학의 일부분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사회관계를 뒤흔드는 포괄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아직 명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들이 초래할 본격적인 변화는 일자리 박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어쨌든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이 통제해서 도구로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로봇은 자율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또는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기는 했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했고, 점점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미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을 뛰어넘어, 자율적 판단을 내렸다. 1996년에 체스 챔피언을 이긴 인공지능이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했던 구식 인공지능이었던 것과 달리, 알파고는 상당한 정도로 자율성을 가진다. 벌써 바둑에서 은퇴하지 않았는가. 그리곤 다른 영역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애초에 이 인공지능은 바둑에 국한된 지능이 아니었다.

일자리 박탈 때문에 갈등이 고조될 수 있지만, 인간과 기계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도 없다. 이미 유럽연합은 인공지능에게 ‘전자인간’이라는 일종의 인격을 부여했다. 인공지능은 법인과 비슷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 진입한 셈이다. 아울러 인간 종(種)도 이미 내부에서 변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시키는 기술과 생체로봇기술은 인간이 사이보그로 진화할 길을 넓히고 있다.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사람들과 못하는 사람들이 인간 내부에서 갈라질 수 있다. 위기나 재앙의 서막일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기회와 위기의 복합체일 것이다. 어쨌든 전통적 의미의 인간이 역사의 주체인 시대는 쌩쌩 지나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마음은 허둥댄다. 사회 제도는? 이런! 꿈지럭거린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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