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문을 계기로 과거사를 직접 마주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오랜 여정이 새삼 재조명을 받고 있다. 유럽 경제 위기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유럽 내외의 주요 문제 해결을 주도해 온 강한 추진력 외에도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역사관이 많은 이들의 신뢰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르켈 총리는 9일 일본을 방문해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과거 총괄은 화해를 위한 전제”라는 등의 언급으로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메르켈 총리의 이같은 역사관은 그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메르켈 총리는 2003년 10월 같은 기독교민주당(CDU) 소속 독일 연방의원이 유대인을 가해자로 보는 시각에도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다고 하자 그를 징계하고 사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당원에서 아예 제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주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인정 때문”이라고 판단 사유를 설명했다.
이런 태도는 그가 2006년 독일 첫 여성총리에 오르고 나서 한층 분명해졌다. 메르켈 총리는 200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신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고 전제하고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며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잘못을 사과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독일 총리로는 최초로 2008년 3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한 연설을 통해 “쇼아(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는 독일인에게 가장 큰 수치”라고 밝혔다. 그는 “쇼아에 의한 문명의 균열은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독일인의 이름으로 유대인 600만명을 대량학살한 일은 많은 유대인과 유럽, 전 세계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2013년 8월에도 역시 독일 총리로는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하우 나치 수용소를 찾아가서는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 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사죄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7월 한국과 함께 일본에 과거사 갈등의 대척점에 있는 중국 방문에서도 과거사 주제를 건드렸다. 당시 칭화(淸華)대 연설에서 독일인들의 과거사 반성이 “고통스러웠지만, 옳았다”고 자평하고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사반세기 기념 연설에선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이 본격화한 시점 역시 공교롭게 1938년 ‘11월 9일(장벽 붕괴 기념일)’이었음을 상기하며 이날을 “수치와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바로 이 때문에 오늘, 우리는 기쁨만이 아니라 독일의 역사가 우리에게 지워주는 책임도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베를린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돌 연설에서 “나치 만행을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 책임”이라고 인정해 주목을 끌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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